"세계화, 한국경제에 긍정적" 8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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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제의 세계화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은 응답자의 연령.학력.지지정당.이념성향 등에 따라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의 세계화가 한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이 81%로, 부정적이라고 보는 견해 19%를 압도하고 있다.

미국인 응답자의 64%, 멕시코인 응답자의 34%만이 경제 세계화가 자기 나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대답한 것과 비교하면 세계화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가 매우 긍정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국민 다수는 한국이 국제 경제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지지하고 있다.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늘리는 것에 찬성한 의견이 61%를 차지하고 있고, 유럽연합(EU) 같은 형태의 동아시아 지역공동체 설립의 필요성에 대해 66%가 찬성하고 있다는 결과가 이러한 태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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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인이 경제의 세계화에 대해 총론적인 차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정책수준에서는 세계화로 인한 희생과 양보는 최소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내 쌀 시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78%에 달하고, 농민 보조금 지원에 대해 87%의 국민이 찬성하고 있으며, 국제무역협정에 가입한 국가들이 근로조건과 관련한 최소한의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89%에 달하고 있는 결과가 한국 국민의 이중적 태도를 보여준다. 또 외국 기업의 한국 기업 인수.합병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57%)이 긍정적인 의견을 앞서고 있고, 세계화 시대에도 국산품 애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59%에 이르는 결과도 한국 사람이 여전히 강한 경제 민족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만약 어떤 나라가 세계무역기구에 한국을 제소했고, 그 결과가 한국에 불리한 것으로 나왔을 경우 한국이 그 결정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52%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을 보인 것도 한국 국민 다수가 세계화 시대가 요구하는 국제 규범을 수용할 태도를 가지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저항과 경제 민족주의적 성향은 학력과 소득이 낮을수록, 그리고 정당 지지도에서는 열린우리당 지지자가 한나라당 지지자들보다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들의 국제경제 인식 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는 주요 국가들과의 무역 공정성을 묻는 질문 가운데 한국에 대해 불공정한 무역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국가로 미국을 꼽고 있는 의견이 72%로 일본(67%).중국(49%).EU(43%)를 앞서고 있는 점이다. 동아시아 지역공동체에 대해서도 미국을 제외할 경우 찬성하는 의견이 66%에서 78%로 증가하는 것도 한국인의 다수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경제적 패권에 대해 우려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인의 이러한 태도는 미국이 세계경찰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56%), 현재 과도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74%) 미국의 패권주의적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통상국가인 한국의 국민이 세계화와 국제 경제 협력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총론적으로 세계화를 찬성하면서도 세계화로 인한 희생과 대가는 회피하는 이중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는 이번 조사 결과는 한국인의 세계화에 대한 의지가 아직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고, 따라서 세계화를 둘러싼 국내적 갈등이 상당기간 지속되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한국이 세계화의 추세에 진정으로 동참하기 위해서는 세계화에 대한 한국인의 이중적 태도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내영 교수 <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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