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수능 '수리 가형' 응시자 '나형' 선택자보다 불리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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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입학시험이란 수험생에게 동일한 시험을 치르게 해 남보다 우수한 소수에게 입학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려운 목표에 도전한 수험생은 배제되고 보다 쉬운 길을 택한 수험생에게 유리한 대입제도가 있다면 그 결과에 과연 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제7차 교육과정이 처음으로 적용되는 2005학년도 수능시험은 많은 불합리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특히 자연계열 진학자들의 경우 수리 '가'를 택한 수험생과 수리 '나'를 택한 수험생 간의 유.불리를 둘러싼 문제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심각성을 안고 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소수의 대학에서는 수리 '가'만을 요구하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으나 경희대.충북대를 비롯한 대다수의 대학은 '가'형과 '나'형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수리 '가'형은 수학Ⅰ.수학Ⅱ.미적분을 출제범위로 하고 있음에 비춰 수리 '나'형은 수학Ⅰ만을 출제범위로 하고 있어 목표 달성의 어려움에 있어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과장된 비유를 하자면 전자가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는 것이라면 후자는 동네 야산에 오르는 것이다. 다 같이 산에 올랐다고 전자와 후자를 동등하게 대우한다면 누가 험한 산에 오르겠는가.

2004년 6월 2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시행한 수능 모의고사는 수리 '가'와 '나'형 선택에 따른 유.불리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모의고사의 분석자료(진학사 자료 참조)에 따르면 같은 원점수일 경우 '나'형 수험생이 '가'형 수험생보다 표준점수에 있어 10~12점 유리하다. 같은 원점수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의 크기로 보자면 '가'형 수험생 쪽이 비할 바 없이 크다는 건 어림짐작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가'형과 '나'형 수험생 모두에게 응시 자격을 부여하는 전국 140개 대학 중 절반에 해당하는 다수의 대학이 별도의 가산점 없이 입학사정을 하도록 돼 있어 뜻있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단지 '가'형을 응시했다는 이유만으로 입시경쟁에서 치명적인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칭 타칭 교육행정 전문가를 자처하는 정부당국과 대학당국의 머리에서 입안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나머지 반수의 대학에서는 성균관대와 청주대의 경우에서 보듯 '가'형 응시자에게 20%의 가산점을 주는 바람직한 예도 있으나 여타 대학에선 1% 내지 5%의 가산점을 주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낮은 수준의 가산점으로는 '가'형 응시자의 불리함이 극복되지 않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점수대별로 근소한 차이는 있으나 적어도 10% 이상의 가산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10% 수준의 가산점을 부여한다고 해서 '가'와 '나'형 선택에 따른 불합리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는 이과 성향의 난이도가 높고 폭넓은 학습 범위를 요구하는 과목이며 다른 하나는 문과 성향의 비교적 손쉬운 과목이기 때문이다.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자면 같은 원점수에 대해 사후적으로 '가'형을 기준으로 동일한 표준점수 또는 백분위 점수를 부여하고 '가'형 응시자에게 적절한 가산점을 주는 것이다. 어렵지만 가치있는 목표에 이르도록 북돋우는 게 교육의 방향이 돼야지 쉬운 길을 가도록 유도해서야 이것이 교육입국의 기치에 걸맞은 일인가. 그렇지 않아도 중.고등학교와 대학생의 학력 저하가 국가경쟁력 확보의 걸림돌로 운위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내가 제기한 이런 문제점에 대해 2005학년도 수능시험을 목전에 두고 있는 전국 60만 수험생과 학부모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도록 당국의 신속하고 현명한 대처를 바란다.

정해관 서울 성북구 돈암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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