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反외세' 자주와 '用외세' 자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남북 정상회담 이후 공동선언 제1항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합의한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에서 밝힌 '자주' 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다.

金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에는 배타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함으로써 혼돈을 일으키고 있다. 과연 배타적이지 않으면서 자주적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외세를 배척하는 '反외세' 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자초하기보다 오히려 주변국을 한반도의 이해에 적절히 활용하는 '用외세' 로서 자주를 모색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일찍이 19세기 청(靑)의 리훙장(李鴻章)은 '조선책략(朝鮮策略)' 을 통해 친(親)중국, 결(結)일본, 연(聯)미국, 방(防)러시아를 권고하면서 조선이 이웃 열강 속에서 취해야 할 생존전략을 제시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조선에서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각 다른 외세에 의존하려는 파당들 때문에 나라를 송두리째 팔아먹게 되었다.

이것은 위정자들이 쇄국정책이라는 '反외세' 에서 외세를 끌어들여 자신들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 '親외세' 로 갑자기 돌아서면서 자초한 결과였다.

해방 이후 냉전기에 어쩔 수 없이 외세에 의존해야 했던 한반도의 운명은 20세기 말 탈냉전기가 가져다 준 기회로 새롭게 개척되어질 수 있게 됐다.

1백년의 세월을 두고 한민족이 받아야 할 교훈이 있다면 '反외세' 와 '親외세' 가 가져온 비극을 되새기는 일이다.

북측이 남북 정상회담에 임하게 된 의도 중 중요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김정일체제 유지를 위해 '反외세' 에 따른 폐쇄사회 유지가 오히려 체제붕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된 점이다.

당면한 식량난과 에너지난 등 총체적 경제난에 처한 북측은 자립할 수 없다면 생존마저 자주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현실을 너무나도 생생히 체험했다.

그토록 주장하던 '反외세' 였지만 북측은 외세의 도움을 통해 경제난 극복을 도모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실질적인 경제원조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는 국가를 대상으로 북측은 나름대로의 '用외세' 를 모색하기 위해 북.미 직접회담, 북.일 수교협상에 임했던 것이다.

북측의 벼랑끝 외교로 시작된 안보와 경제를 담보로 한 협상은 북측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자평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간의 대결과 반목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남북한 당사자의 자주적 입지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주변국들의 입김이 커지게 되며, 따라서 '用외세'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역시 주한미군이다. 그들은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위(NMD) 전략과 함께 북측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지만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보장된다면 그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주한미군의 지위를 평화유지군으로 변경해야 한다거나 NMD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반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안정이 절실하며, 이러한 구도가 형성돼야 비로소 주변국들은 남북한과 화합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노력하게 될 것이다.

'反외세' 를 지양하자는 것이 '親외세' 를 지향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해서는 평화체제에 기반을 둔 남북한의 자주적 입지를 바탕으로 주변국 활용을 위한 상호 윈윈(win-win)전략이 필요하다. 21세기 한반도의 미래는 '用외세' 의 성공 여부에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