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인터뷰] 영국 진출 6개월, 볼턴을 바꿔 놓은 이청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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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용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국 축구의 수퍼 스타는 단연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또 하나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이청용(21·볼턴 원더러스)이다.

박지성이라는 태양이 여전히 하늘 높이 떠 있지만 시간은 이청용의 편이다. FC 서울에서 뛰다가 지난 7월 볼턴에 전격 스카우트된 이청용은 이적한 지 6개월도 안 돼 팀에 굳게 자리를 잡았다.

영국 언론은 ‘이청용이 볼턴을 바꿔놓았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13경기에 출장해 3골을 넣었다. 팀 공헌도는 기록을 뛰어넘는다. 게리 맥슨 볼턴 감독이 “도대체 이청용이 만들어 준 찬스를 왜 골로 연결시키지 못하는가”라고 화를 낼 정도다. 2009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해를 준비하고 있는 이청용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드디어 월드컵의 해가 밝는다. 내년 목표는.

“대표팀에 뽑혀 남아공에 간다면 목표는 16강이다. 일단 16강에 오르면 그 다음부터는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

-라이벌이자 절친한 친구인 기성용(셀틱)과 함께 이루고 싶은 목표도 있지 않은가.

“나와 성용이가 월드컵 한 경기에서 나란히 골을 넣고 싶다. 각각 다른 경기에서 넣는 것보다는 같은 경기에서 넣어야 승리할 가능성도 커지지 않겠는가.”

-올해 1월 1일 새해 다짐은 뭐였나.

“새해 목표로 세웠던 건 소속팀 FC 서울의 우승이었다. 유럽에 나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지만 정말로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해외 진출은 에이전트에게 맡기고 난 공만 열심히 찼다.”

-생각보다 빨리 잉글랜드에 정착했는데.

“처음에는 집도 없고, 말도 안 통해 힘들었다. 감독이 꾸준히 출전 기회를 주었고 동료도 잘 대해줘서 어려움을 넘길 수 있었다. 경기를 뛰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또 첫 골이 터진 후부터 자신감도 생기고 동료와 관계도 더 좋아졌다.”

이청용은 겉보기에는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탈 것 같다. 하지만 9월 말 집을 마련한 뒤 이웃들과 인사하면서 중고 텔레비전을 공짜로 얻을 정도로 넉살도 좋다. 피지컬 트레이너를 찾아가 훈련 프로그램을 따로 짜 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당찬 구석도 있다. 콧대 높은 동료도 서글서글하면서도 겸손한 그에겐 텃세를 부리지 않았다. 물론 실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가장 친한 친구는 오만 출신 골키퍼 알 합시다. 2003년 한국과 A매치에서 신들린 선방으로 코엘류 전 대표팀 감독에게 1-3 패배를 안겼던 바로 그 선수다.

-팀에서 목표는 뭔가.

“일단 강등권을 면해야 한다. 볼턴은 늘 중상위권을 유지하던 팀이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현재 볼턴은 20개 팀 중 18위다. 이대로 시즌을 마치면 내년 2부리그 격인 챔피언십리그로 떨어진다. 이청용은 팀이 강등될 경우 다른 프리미어리그 팀에 스카우트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이청용은 “지금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 어린 나이에, 대표팀과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도대체 어떻게 이겨냈느냐고.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정말이다. 천천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킥오프를 앞두고 양 팀 선수들이 도열해 있을 때 이청용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는 “즐기자. 힘든 경기일수록 그 생각을 한다”고 했다. 월드컵이 열리는 ‘즐거운 2010년’이 이청용 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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