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 파행, 야당 책임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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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많은 기대를 담고 출범한 16대 국회 역시 구태(舊態)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이어서 안타깝다.

개원하자마자 시작된 여야의 정략적 싸움은 욕설.삿대질을 거쳐 급기야 야당의 회의 불참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서로 '단독국회' 와 '실력저지' 만을 외치니 국회는 새 밀레니엄 첫 파행을 기록할 태세다.

여야 다툼의 핵심은 4.13 총선 국정조사 문제다. 먼저 이 문제가 과연 국회를 볼모로 잡을 만큼 심각한 사안인지, 특히 진행 중인 남북문제를 비롯한 여타 국정 현안보다 중대한 사안인지 묻고 싶다.

그런 차원에서 부정선거 국정조사 요구를 국회 일정과 연계시키는 한나라당에 1차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편파수사 의혹까지 제기하는 한나라당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거가 이미 두달여 지난 시점에서 이 문제만을 붙잡고 늘어진다는 것은 일의 경중(輕重)을 잘못 판단한 것이며 국민 정서와도 동떨어진다는 생각이다.

한나라당의 집요한 국정조사 요구 이면엔 당 지도부의 말못할 사정도 개입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이 끊임없이 이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에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지도부로선 외면할 수 없는 처지라고 들린다.

또 여당쪽에서 제기하듯 불법 혐의를 받고 있는 소속 의원에 대한 '방탄용'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당내 사정을 빌미삼아 국회를 정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보아온 낡은 정치행태다.

선거부정 문제는 국회를 정상적으로 가동시켜가면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련 상임위에서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계속 추궁한다든지, 부정선거 백서를 발행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민주당도 집권 여당답게 편협성에서 탈피, 여유를 보여야 한다. 비록 야당 요구가 정치공세적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라면 국정조사에 인색할 이유가 없다.

국회는 지난 1월 국정조사특위 구성요건을 재적의원 4분의1로 완화했다. 여기엔 국정조사를 과거 같은 대형 정치행사로 보지말고 상시적 의정활동으로 다루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당의 반대 명분은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 때문이라고 하지만 할 생각만 있다면 이 조항을 비켜갈 수 있는 방법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고 본다.

지금 국회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국회가 무엇을 비중있게 다뤄야 하는지 굳이 설명치 않아도 알 것이다. 은행 구조조정 등을 위한 개혁입법이나 의약분업 관련 법안 등 시급히 처리해야 하고 꼼꼼히 따져볼 법안과 민생현안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집안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남북 국회회담을 하겠다는 것이냐고 국민이 질책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야는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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