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살아계셨군요"…방송인 이지연씨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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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빠…. 우리 오빠 맞지요. "

17일 오후 1시 대한적십자사 2층 강당. 북한 적십자회가 보내 온 명단에서 오빠 리래성(李來成·68)씨의 사진을 거듭 보던 한 여성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1983년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의 아나운서 이지연(李知娟·53·여)씨.

李씨는 "다른 이산가족의 만남을 주선하는 게 제 일이었는데 이렇게 오빠 소식을 접하니 그 분들이 왜 그렇게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 있겠어요" 라고 말했다.

지연씨 가족들은 래성씨가 살아 있으리라는 믿음이 너무 간절해 실종신고도 하지 않았다.

32년 전북 이리 출생인 래성씨는 6.25가 발발하자 인민군에 의해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이리농고 3학년이던 래성씨는 1남5녀 집안의 외아들로 장래가 촉망되던 청년이었다.

지연씨는 "내가 그때 네살이었는데 교복을 입은 오빠의 모습이 멋있었지요" 라고 회상했다.

휴전 뒤 李씨 가족들은 일본 우정국 소인이 찍힌 래성씨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거제포로수용소에 있다가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으로 도망쳐 왔다. 막내 점봉(이지연씨 당시 이름)이는 잘 있는지 궁금하다" 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를 마지막으로 래성씨와의 모든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李씨 가족은 이 편지가 온 뒤 70년대까지 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돌아가신 李씨의 부모는 "래성이가 반드시 살아 있을 거야" 란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李씨 자매들은 이 뜻을 받들어 묘비에 래성씨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85년 작고한 어머니 박귀남씨는 83년 막내딸 지연씨가 남북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며 "네 오빠부터 찾아봐라" 는 질책(?)을 하기도 했다.

李씨는 "그 때 이산가족 찾기는 정말 거국적인 일이었죠. 제 감정을 앞세울 때가 아니었습니다. 1백30여일간의 생방송을 끝내고 마지막회에 겨우 '저도 이산가족입니다' 는 한 마디를 했을 뿐이죠" 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 때 케이블 TV인 KTV에서 특별생방송 '만나야 할 사람들' 을 진행할 때는 방송 도중 오빠 생각에 대성 통곡을 하기도 했다. 현재 KBS-1TV '언제나 청춘' 을 진행하고 있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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