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문제와 '차기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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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문제는 국가장래가 걸린 대사인 만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 여야 정당은 초당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남북 화해시대를 맞아서는 더구나 여당이 앞장서 남북 정상회담의 상세한 내용과 후속조치 진전상황을 야당에 알리고, 야당도 각론에서는 따지고 비판하더라도 전체적으로 국익을 앞세우는 자세여야 한다.

그러나 요즘 돌아가는 사정은 영 그렇지 못하다. 정부와 여당은 시도 때도 없이 혼선과 오해를 자초하고 야당은 이를 물고늘어져 대여(對與)공격의 소재로 삼는 지경이 됐다.

여당대표의 말대로 국회가 '개판' 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정파(政派)의 이익과 국익을 혼동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남북문제를 둘러싼 편협한 정쟁의 대표적 사례인 '친북' 논쟁도 바탕에는 여야간 깊은 불신과 정파적 시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권이 그동안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정상회담 이후' 를 처리해 왔다면 지금처럼 갈등이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한 예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승용차에 동승한 일이 사전 예고된 절차였는지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이 공.사석에서 하도 말을 달리 한 탓에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공식 입장을 밝혔는데도 국민은 아직 헷갈리고 있다.

이런 일이 계속돼서야 야당은 물론 일반국민도 온갖 설(說)에 솔깃해하고 불신을 더할 수밖에 없다.

북쪽에서는 남한의 다음 정권도 대북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할지 걱정한다는 말이 있다' 는 취지의 金대통령 발언도 깊이 새겨볼 대목이다.

'장기집권을 염두에 둔 발언' 이라는 한나라당의 시각은 청와대측 반박대로 '논리의 비약' 이라 하더라도, 국가차원의 대북사업을 정권차원에서 비교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권차원 아닌 국익차원에서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야당에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야당의 비판도 수용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일궈내는 초당적 합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런 절차 없이 여권의 정보독점과 은밀한 거래로 남북문제를 풀어간다면 그 자체가 국민적 반발에 부닥칠 것이다.

남북문제는 한 정권의 전유물일 수도, 정권의 유.불리에 이용하는 수단일 수도 없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지칭해 '남북문제에 사려깊게 대응하지 못하면 (다음 정권은)떼어논 당상이라는 상황도 바뀔 수 있다' 고 한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발언도 사려깊지 못했다.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우선 여권부터 공개성.투명성에 기초해 매사를 야당에도 알리고 국회에서 논의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런 검증과정을 거쳐야 국민도 납득하고 초당적 협력도 가능해진다.

지금처럼 당리와 국익을 혼동해서는 될 일이 없다. 남북문제를 현정권과 차기정권으로 분리해서 접근하는 자체가 정책의 일관성을 잃는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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