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언론·정치 풍속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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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정치 풍속사
남재희 지음
민음사, 316쪽, 1만2000원

‘언론·정치 풍속사’라는 그럴듯한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술에 얽힌 ‘ 야화(夜話)’ 모음집이다. 단순한 술 얘기는 아니고 ‘나의 문주(文酒) 40년’이란 부제가 상징하듯 문화의 향기가 그윽한 술자리 이야기다.

문화의 향기란 게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 냄새다. 시대배경은 196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그 시절을 언론인으로 20년, 정치인으로 20년씩 살아온 저자 남재희(70) 전 노동부 장관의 이력이 보여주듯 책 속의 등장인물은 정치인·언론인이 대부분이다. 남씨의 ‘문주 편력’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개발독재 시대의 한 풍속화를 만나게 된다. 그 풍속화에 한 줄 설명을 덧붙인다면 “대폿집을 갈 줄 아는 정치 지도자, 나는 그런 지도자를 바란다”쯤 되지 않을까.

첫 페이지를 열면 청곡 윤길중 전 국회부의장 얘기가 나온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청곡은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면 “자네들, 서두현령(鼠頭懸鈴:쥐 목에 방울달기)을 아는가?”하고 묻는다.

‘묘두현령(猫頭懸鈴: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에서 따온 ‘서두현령’의 뜻을 청곡은 이렇게 풀이했다. “몇 백년이 지나도록 해결 못한 묘두현령을 어린 쥐가 자기 목에 방울을 달고 큰 고양이에게 잡아 먹혀 그 방울이 고양이 배 속에서 소리 나게 함으로써 해결했다는 것”이다. ‘호랑이굴로 들어갔다’는 일화로 남씨는 자신의 일생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남씨가 볼 때 언론인 석천 오종식이야말로 음주를 도(道)의 경지로 끌어올린 주선(酒仙)이었다. 술 마시며 나누는 청담(淸談)에서 석천의 주도는 가장 빛을 발했다. 술과 안주의 종류는 따지지 않았으며 술집 분위기와 주모(酒母)의 품위, 그리고 술 마시는 속도를 중시했다.

이 밖에 역대 대통령들과의 술자리를 비롯해 86년 ‘국방위 회식 사건’등 권력 핵심 세력들 간의 ‘밤의 역사’도 술술 잘도 풀어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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