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종사자 분석 '…시대의 일벌레들'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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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왜 인터넷 사업에 종사하는가'

가. 부자가 되기 위해

나. 먹고 살려고

다. 고등학교 다니는 것보다는 재미있으니까

라. 아무도 날 받아주지 않아서'

당신이 만약 가를 택했다면 당신은 인터넷 업계 종사자가 아니다. 아니, 최소한 넷슬레이브(Net Slave), 즉 '네트워크 노예' 는 아니다.

왜 그 바닥 현실을 너무 모르니까. 밖에서는 누가 스톡옵션을 어마어마하게 받고 어디로 옮겼다느니, 어떤 벤처 주식이 코스닥에 상장하자마자 몇배로 뛰어올랐다는 등의 환상적인 얘기가 심심치않게 들리지만 실제론 하루 24시간이 모자라 먹고 자는 것도 제대로 해결못하는 게 이들이다.

'인터넷 시대의 일벌레들' (빌 레사드 등 지음.김효명 옮김.모색)은 이런 초인적인 노동강도를 견디며 살아가는 '네트워크 노예' 들을 상세히 분석한 책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화제를 불러온 '인터넷 시대의… ' 은 단순히 업계 종사자의 한풀이 책이 아니다.

1년 동안 철저한 현장 조사를 통해 이 직종의 여러 유형을 분석하고 예를 제시한 직업분석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 책을 노동자를 직접 취재해 여러 직업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스터드스 터켈의 1974년 퓰리처상 수상작 '워킹(Working)' 과 견주기도 한다.

이 책은 사소한 수리를 책임지는 시스템 관리자부터 최고경영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터넷 종사자들을 네트워크 노예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를 엄격한 신분제도인 카스트에 비유해 다시 이들을 '뉴미디어 카스트 시스템' 의 11계급으로 분류한다.

노예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그 사이에도 분명한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뉴미디어 카스트 시스템' 에서는 계급 사이에 신분상승의 기회가 있다.

계급 분류에는 '쓰레기 청소부' (1단계), '경찰과 매춘부' (2단계), '사회봉사자' (3단계), '택시 운전사' (4단계), '튀김 요리사' (6단계)등 엉뚱한 단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인터넷 직종이 새로 만들어진데다가 워낙 전문적인 곳이어서 이들 내부에서 쓰는 용어가 아닌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비유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하위 계급인 쓰레기 청소부는 시도 때도 없이 호출을 받는 기술자이고 택시 운전사는 부르면 달려가는 프리랜서, 튀김 요리사는 웹 관리자 등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같은 이라면 최상등급인 '왕초' 에 해당되고, 채팅이나 즐기는 정도라면 -1단계인 '두더지' 다.

이런 독특한 비유와 함께 철저하게 실제 벌어지는 상황을 바탕으로 쓴 각 직업군의 실례는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긴장감을 준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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