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5년 한국 첫 남극관측탐험대 이끌었던 홍석하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홍석하 대표가 서울광장에 마련된 남극관측탐사대 관련 전시장 앞에서 1985년 탐사대를 이끌고 남극에 갔던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 제공=사람과 산]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들어선 남극 주제의 ‘겨울이야기’ 행사장에는 작지만 눈에 띄는 코너가 하나 있다. 1985년 겨울 장도를 떠났던 한국의 첫 남극관측탐험대를 다룬 전시다. 한국이 남극조약에 가입한 86년과 세종기지가 건설된 88년보다 앞서 남극에 발을 디딘 한국인들이다. 이 탐험대를 지휘했던 대장이 홍석하(62) 월간 ‘사람과 산’ 대표다. 24일 오후 서울광장 전시장을 찾은 그는 당시 대원들이 사용했던 피켈 등 등반도구와 탐사도구들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었다.

“남극에 뼈를 묻고 와도 좋다는 각오로 갔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85년 당시 남극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었으니 두려움도 컸지요. 남극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어느 대원의 어머니는 출발 전 그를 찾아와 “아들을 왜 사지로 끌고 가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대원의 부인이 “남극에 가려면 이혼하고 가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럴수록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열정이 더 타올랐다. 4년이 넘는 준비과정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일이었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85년 11월 6일 떠나 16일, 남극 킹조지섬에 첫발을 디뎠다. 도착하고 보니 그곳은 사지가 아닌 희망의 땅이었다. 뒤뚱거리던 펭귄이 먹이를 잡아챌 때는 잽싸게 움직이는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다. 웅장한 빙벽을 바라볼 때는 가슴이 뛰었다.

“가슴이 뭉클했지요. 눈물도 나고. 태극기와 함께 한글로 ‘남극기지’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꽂는데 모두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애국가를 불렀어요. 찡한 순간이었습니다.”

아쉬운 일도 있었다. 남극의 최고봉인 빈슨매시프봉을 등반하고 싶었지만 이동하는 비행기의 좌석이 모자라 후배들에게 양보한다는 생각에 이를 포기했다. 대신 킹조지섬 탐사팀의 대장을 맡았다. 당시 빈슨매시프보 등정에 성공했던 허정식(54)씨는 “정상에 오르는 순간 감격의 눈물이 나왔는데 혹한 때문에 속눈썹이 얼어붙었다”며 “남극은 눈물도 허락하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산악인인 그는 1980년대 동료와 ‘산악사전 출간회’를 만들어 사전 출간을 준비하던중 남극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했다. “자료를 읽다 보니 웬걸, 남극에도 산이 있다는 거에요. 산이 있으면 당연히 올라야지요. 그때부터 남극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이 모임은 곧 남극탐험을 위한 준비모임으로 변했다.

당시 남극 탐사의 꿈을 꾸고 있던 해양소년단연맹의 윤석순 총재와 박현리 사무총장과 뜻을 같이했다. 마침 정부도 남극조약 가입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선 남극 탐사 실적이 중요했다. 그렇게 “전두환 대통령 때였는데, 모두 100만 달러를 지원받았습니다. 당시로선 상당한 금액이었어요.” 윤 총재를 단장으로, 그를 대장으로 해서 과학자들과 산악인을 포함한 남극관측탐험대가 꾸려졌다. 85년 11월 6일 한국을 떠난 그들은 12월 10일 돌아왔다. 남극 탐사 실적을 토대로 한국은 이듬해인 86년 남극조약에 가입했다. 홍 대표는 남극조약 가입의 터를 닦은 공로를 인정받아 86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89년 월간 산악잡지 ‘사람과 산’을 창간하고 90년부터 경영을 맡았다. 97년 외환위기 때에도 잡지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냈다. 산에 대한 애정으로 ‘산악문학상’도 만들었다. 2006년엔 백두대간진흥회를 설립하고 유럽의 권위 있는 산악인 상인 ‘황금피켈 상’의 아시아 상을 제정했다. 이런 공로로 지난해 ‘산의 날’인 10월 17일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산에 대한 열정도 둘째가라면 서럽지만 남극에 대한 열정도 여전하다. 윤 전 총재와 함께 남극연구진흥회를 설립하는 등, 남극에 대한 끈을 여전히 쥐고 있다. 18일 한국 최초 쇄빙연구선인 아라온이 출항하는 것을 보면서도 감회가 남달랐다. 그가 남극을 다녀오던 시점부터 쇄빙선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틈만 나면 산에 가는 그지만 무엇보다 오르고 싶은 산은 남극의 빈슨매시프 봉이다. “지금도 남극의 펭귄과 빙벽이 눈에 밟혀요. 죽기 전에 꼭 남극 땅을 다시 밟을 겁니다.” 

전수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