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LG 발표… 재계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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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LG그룹이 2003년까지 순수 지주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하자 재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계열사끼리 얽히고 설킨 주식소유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면서도 지주회사를 설립하려면 오너 가족들이 큰 돈을 들여야 하므로 당장 실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SK그룹 관계자는 "돈이 많이 들므로 LG처럼 전 계열사를 지주회사 체제로 묶는 것은 곤란하다" 면서 "SK㈜(옛 유공)를 사업지주회사로 삼아 산하에 SK텔레콤과 SK상사.SK엔론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는 주식 소유관계의 단순화 작업을 계속 추진하겠다" 고 말했다.

덩치가 크고 주식가격이 높아 그룹을 하나의 지주회사로 묶기가 더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그룹의 관계자는 "지주회사에로의 전환을 검토 중" 이라면서 "현행 지주회사 관련 규정으론 돈이 많이 들고 세금도 많이 내야 하므로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고 말했다.

삼성은 삼성전자 등 몇몇 주력기업을 중심으로 소유구조를 단순화하는 작업을 더욱 서두를 방침이다.

◇ 지주회사 설립의 의미〓LG의 지주회사 설립 발표는 ▶재계가 환경의 변화에 맞춰 스스로 변하고 있다는 것▶지금까지의 재벌 일변도의 기업구조가 순수 지주회사.사업지주회사.미국식 복합기업.일본식 기업계열 등으로 다원화하는 계기가 되리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 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재계가 지주회사 설립 요건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해왔는데 LG로선 허용된 범위 안에서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지주회사를 설립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 이라고 평가했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재계가 안고 있는 기업 지배구조의 딜레마를 해소하는 의미가 있다" 고 말했다.

재벌구조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 오너가 5~6%밖에 안되는 소유지분으로 독단 경영을 한다는 점인데 이같은 지적이 지주회사 설립으로 약화되리란 것이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가족들이 지주회사를 소유하고 자회사는 전문경영인이 책임지고 경영하는 미국.유럽식의 선진적 지주회사 시스템이라면 긍정적인 변화" 라고 평가했다.

◇ 지주회사 설립의 어려움〓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돈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오너들은 지주회사의 주식을 50% 이상 보유해야 하며, 자기자본만큼만 외부에서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너가 1조원의 돈을 갖고 있다면 4조원까지 활용할 수 있다. 이 돈으로 상장기업은 30% 이상, 비상장기업은 50% 이상 주식을 소유해야 한다.

주식가격이 액면가의 10배라면 주식을 살 수 있는 비율은 10분의1로 줄어들므로 재벌 규모가 크고 계열사 수가 많을수록 지주회사를 설립하기가 힘들다.

또 지주회사는 제조업과 금융업 자회사를 동시에 거느릴 수 없다.

LG가 지주회사 설립을 선언한 것은 역설적으로 LG투자증권 등 금융계열 5개사가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측면도 있다.

지주회사를 설립하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하는 점도 재벌로선 부담이 될 수 있다.

◇ 돈이 얼마나 드나〓LG는 지주회사의 규모를 자기자본 5조~6조원으로 예상했다.

설립 초기 주식발행 가격을 액면가의 두배로 가정하면 LG그룹 오너 가족들은 현행법상 자본금의 50%를 조달해야 하므로 최소한 1조2천5백억원~1조5천억원을 마련해야 한다.

주식 발행가격을 4배로 치면 그 절반 정도가 필요하다. LG가 1단계 작업이라고 밝힌 LG전자와 화학의 사업 지주회사화에도 오너 가족들은 5천억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 지주회사란〓지배회사.모회사라고도 하며 산하에 있는 종속회사, 즉 자회사의 주식을 전부 또는 지배가능한 한도까지 매수해 보유하면서 경영하는 행태를 말한다.

지주회사에는 순수 지주회사와 사업 지주회사의 두가지 유형이 있다. 순수 지주회사는 직접 하는 사업 없이 다른 기업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그 기업을 지배.관리하는 것을 유일한 업무로 삼는다.

사업 지주회사는 직접 어떤 사업을 하면서 다른 기업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지배관리하는 것으로 혼합 지주회사라고도 한다.

김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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