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사막 남극을 찾아서]⑪미생물 하나도 남극 바다로 내보내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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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세종기지의 쓰레기 처리는 엄격하고 철저하다. 그만큼 남극의 환경은 오염에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 탓에 오염물질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의 종류와 수도 많지 않다. 때문에 남극의 환경은 한번 파괴되면 지구상의 다른 지역에 비해 복구에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남극조약에 환경관련 여러 협정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구의 마지막 남은 청정지역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남극의 대기는 지구의 오염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로 활용되는데 기지에서 플라스틱을 태우면 민감한 대기관측장비가 이를 감지, 실제 지구의 오염상황을 정밀하게 측정하기가 힘들게 된다. 대기관측장비는 담배연기에도 반응할 정도로 민감하다.

세종기지는 남극에 기지를 세운 다른 여러 나라들과 비교할 때 환경보호에 모범을 보이고 있다. 대원들의 말에 따르면 일부 국가들은 건설 공사 쓰레기를 그냥 매립 해버리거나 심지어 기름이 유출돼 바다로 흘러가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그대로 소각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세종기지에서만큼은 이같은 일은 상상도 못한다는 것이 대원들의 설명이다. 필자가 도착하기 얼마전 유류 보급과정에 일부 기름이 흘러나온적이 있었는데 미리 설치돼 있던 방호막 때문에 한 방울도 유출되지 않고 모두 안전하게 수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만일에 있을지도 모를 환경문제에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 대원들은 생활 쓰레기를 철저히 분리 수거한다. 수거된 각종 쓰레기 중 종이류는 소각장에서 태운다. 기지에는 높이 3미터 폭 2미터 정도의 소각로가 있다. 종이를 제외한 캔, 플라스틱, 폐 건축자재, 폐 오일 등 나머지 모든 쓰레기는 모두 1300km나 떨어진 푼타 아레나스로 반출한다.

세종기지의 철저한 폐기물 관리는 화장실 오폐수 처리를 보면 실감이 난다. 세면장이나 목욕탕, 심지어 화장실에서 발생하는 오수도 모두 정화한다. 세종기지는 발전기가 설치된 발전동 부속 건물에 오폐수 정화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정화방식도 약품을 이용하는 화학적인 방식이 아니라 미생물의 유기물 분해를 이용한다. 환경 오염을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다. 이 오폐수 정화시설에 사용하는 미생물은 한국 중소기업이 특허를 갖고 있다. 미생물이 유기물을 왕성하게 분해하는 온도는 섭씨 30도 근처. 오폐수 정화시설을 발전동 옆에 설치한 것도 발전기를 돌릴 때 발생하는 열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세종기지는 특히 오폐수 정화에 사용된 미생물이 바다로 배출되는 것까지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미생물이 남극의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화된 물이 나오는 배수구 바로 앞에 자외선 살균기를 설치해 가동하고 있다.

"남극에는 살지 않는 미생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갈 경우 남극에만 있는 세균이나 동식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알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한 대원의 이같은 설명은 이곳 세종기지가 환경보호에 얼마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박지환 자유기고가 jihwan_p@yahoo.co.kr

*박지환씨는 헤럴드경제, 이데일리 등에서 기자를 했었으며,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박지환 기자의 과학 뉴스 따라잡기’를 연재했었다. 지난 2007년에는 북극을 다녀와 '북극곰도 모르는 북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조인스닷컴은 내년 2월 초까지 박씨의 남극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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