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군과 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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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성이 전쟁터에서 활약한 기록은 고대 중국 상(商)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녀차별이 유별났던 조선시대에도 병영이 있던 함경남도 북청군 같은 곳에서는 기생도 말을 달릴 줄 알았다.

이항복(李恒福)이 73세의 북청 노기(老妓)에게 '말 안장에 걸터앉으니 아직 호기가 남아있네(據鞍豪氣未全衰)' 라고 칭찬하는 시를 남겼을 정도니 유사시엔 전투를 도왔을 법도 하다.

동학군에는 이소사라는 젊은 여인이 지휘관이 돼 1894년 3월 장흥부 공격을 이끌었다고 한다.

구한말의 윤희순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안사람 의병단' 을 조직해 일제에 저항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남자현, 광복군에 여군군번 1번으로 참여한 신정숙 등 여군 전사(前史)를 수놓은 여성들은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여군은 1950년 9월 임시수도 부산에서 '여자의용군교육대' 로 출범했으니 벌써 역사가 반세기나 된다. 3군사관학교의 여생도 모집은 이미 정착됐고, 올들어 해.공군도 여군 학사장교 모집에 나섰다.

해군은 내년에 임관할 여성 학사장교들을 위해 함정시설을 남녀공용으로 고치느라 비상이다. 내년엔 최초로 여성장군이 탄생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문제는 남성이 주류인 기존 군대가 시대변화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적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얼마 전 부하장교의 부인을 성추행했다가 자진전역한 한 장성의 경우는 예외로 치더라도, 국방부가 지난 1일 시행에 들어간 '성적 군기문란사고 방지규정' 은 군간부들의 '고민' 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이성교제는 일과 후 영외에서만 실시한다' '교관과 피교육생의 이성교제는 교육종료 후에만 가능하다' '상.하 2단계까지의 지휘관계 남녀간 교제는 보직만료 후 가능하다' 등등. 여군의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도 엎치락뒤치락이었다.

61년까지는 7세 미만의 자녀가 없으면 기혼여성도 입대가 가능했지만 63년에 미혼여성만으로 제한됐다.

64년에 다시 '결혼은 되지만 출산은 안된다' 로 바뀌었다가 88년에야 결혼.출산이 모두 허용됐다.

현재 임신 중인 여군은 임신 7개월부터 당직근무를 면제받는데, 여군들은 "정작 위험한 시기는 임신초기인데" 라며 의아해한다고 한다.

정부 방침대로 군간부의 1.4%인 여군비율을 장차 5%까지 끌어올리려면 우선 의식.제도부터 개선해야 할 것이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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