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가 분노한 ‘토착 비리’ 홍성군에 무슨 일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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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 전체 공무원(677명)의 16%에 해당하는 108명이 최근 5년간 사무용품을 구입한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꾸며 군 예산 7억원을 빼돌린 사실이 21일 세상에 알려진 이후 사흘 만에 홍성군이 또다시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본지 12월 22일자 22면>

24일 홍성군청 안에서 군청 직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군수가 뇌물수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공무원 108명이 가담한 공금 빼먹기 비리 사건이 드러난 데 이어 이날 산림녹지과가 압수수색당하자 군청 주변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홍성=프리랜서 김성태]

요즘 홍성군청은 조직 전체가 비리에 휩싸이면서 초상집 분위기다. 이종건 전 홍성군수는 홍성군 버스공영터미널 이전과 관련해 업자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가 인정돼 이달 초 대법원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중도하차했다. 여기에 ‘공무원 108명 무더기 비리 연루 사건’에 이어 산림녹지과 압수수색까지 벌어지자 홍성군 공무원과 주민들은 “비리의 끝이 어디인가”라고 자문하고 있다.

이날 군청 직원들은 사무실 밖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한숨만 내쉬었다. 사무실에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임용철 산림녹지과장은 “자숙하는 것 이외에 어떤 게 있겠느냐”며 고개를 숙였다. 광천읍 옹암리 김재환 이장은 “충절의 고장에서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읍내 음식점과 주점에는 군청 직원 발길이 뚝 끊겼다. 군청 직원 B씨(7급)는 “공금을 챙겨 술 먹으러 다니는 것으로 오해할까 봐 모든 회식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주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이날 낮 홍성군청 앞 M음식점에는 군청 직원 4명이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옆 좌석의 주민 이모(55)씨가 “군청 직원이 아니냐”고 물었다. 직원들이 “그렇다”고 하자 이씨는 “군 예산 다 빼돌리고 무슨 염치로 밥 먹으러 왔느냐”며 몰아세웠다. 식당에서 만난 군청 김모 과장은 “ 외부에서 식사하는 것조차 힘들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홍성YMCA 등 지역 9개 시민사회단체는 성명을 내고 “투명한 홍성, 신뢰받는 홍성을 위해 납품비리에 그치지 말고 홍성군 사업에 대한 전반적 조사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성군의 비리 행태가 만연한 데는 지방자치단체 간 인사 교류가 거의 없는 점이 한 가지 원인으로 지적된다. 대전지검 홍성지청 윤대진 부장검사는 “1995년 지방자치제가 본격 실시된 이후 한 개 시·군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 때문에 직원 간 유대감이 강해지고 예산 편성과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홍성군의 경우 전체 677명 가운데 70% 이상이 홍성에서만 근무했다. 예산 빼먹기 비리 사건에는 군청 21개 부서 가운데 70% 이상의 부서가 가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예산 운용 실태를 감시할 감사과, 집행부의 행정을 견제하는 의회 담당부서인 의회사무과도 예외가 아니었다.

홍성=김방현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홍성군=인구 8만7700여 명. 예부터 충남 서북부 행정의 거점이었다. “홍성에서는 권력 자랑하지 마라”는 말이 전해온다. 지금도 법원·검찰, 세무서, 등기소 등 이른바 ‘권력기관’이 모여 있다. 김좌진 장군과 만해 한용운 선생,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 등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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