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사망 장기수 진태윤씨의 자식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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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비전향 장기수들의 송환 방침이 결정된 가운데 숨진 비전향 장기수의 재산 송환 노력이 재산관리인 등에 의해 이뤄지고 있어 성사될 수 있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한성공회 전주교회 허종현(許鍾鉉)신부 등은 1962년 간첩으로 남파됐다 붙잡힌 진태윤(陳泰允)씨가 97년(77세)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산을 북녘땅에서 살고 있는 그의 아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26년간 옥고를 치르고 88년 풀려난 뒤 전주에 혼자 살면서 빗 제조공장에 취직, 3천4백여만원을 모은 陳씨는 "유산을 함경남도 유성에 두고 온 아들(양만씨.남파 당시 두살)에게 물려주고 싶다" 는 유언을 남겼다.

몇년 전만 해도 남북관계가 얼어 붙은 상태여서 許신부는 통일부 등 관련 부처와의 협의는 엄두도 못내고 아들 양만씨를 상속인으로 정해 진봉헌(陳鳳憲)변호사를 재산관리인으로 선정했다.

민법상 상속자가 없는 재산은 법정관리인이 3년 동안 맡아 보관한 뒤 그 기간 중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공고를 거쳐 국고에 귀속시키도록 되어 있다.

陳씨의 경우 지난달말 법정관리인이 재산을 관리하도록 규정된 3년 기한이 지났지만 陳변호사는 법원에 공고 신청을 하지 않았다.

최근 남북화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어 관계당국과 북한의 도움으로 양만씨를 찾을 수 있다면 죽은 陳씨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陳변호사는 "우리 법에 북한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규정돼 있어 북쪽에 사는 아들도 민법상 상속권이 있다" 며 "陳씨는 죽었지만 유산만이라도 고향으로 갈 수 있도록 남북한 당국이 함께 길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한편 숨진 陳씨는 許신부에게 "전세계 땅 덩어리를 다 준다해도 바꾸지 않을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 양만이 보아라. 너와 너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 가슴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것 같구나. 너를 키워주지 못한 이 아버지를 용서해다오" 라는 애끓는 부정(父情)이 담긴 편지를 남겼다.

許신부는 陳씨가 비록 고향으로 돌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아들에게 유산만이라도 남기겠다는 집념으로 한 겨울에도 감방에서처럼 모포 2장으로 생활하며 돈을 모았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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