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하종오 '사랑노래'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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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 만난 이 세상에 풀꽃 피고

네가 살아 있을 때

널 따라 나비 날거든 나도 살아가는 줄 알거라

햇살에 부신 눈을 부비며

한 세월 보이잖는 길을 더듬어

푸른 하늘 서러운 황토에 왔다

우리 괴로운 이 세상에 먹구름 끼고

네가 눈물 흘릴 때

널 따라 비오거든 나도 우는 줄 알거라

갈대 서걱이는 허허벌판 바라보며

바람부는 벼랑 끝에 장승으로 서 있지만

모진 바람은 더욱 응어리지는구나.

- 하종오(46) '사랑노래' 중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이길래 세상에 살아 있는 말 모두 갖다 바쳐도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 네가 꽃이 되면 나는 나비로 날고 네가 눈물 흘리면 나는 비가 되는 것이 사랑일진대 어째서 만나지지는 않는 것인지.

그래 바람부는 벼랑 끝에 장승으로 서 있거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목을 길게 늘이고 죽는 날까지 서 있거라.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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