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원, 미란다원칙 재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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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워싱턴〓김진 특파원] 미국 연방대법원은 26일 수사관이 범죄 용의자를 체포할 때 묵비권과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알려줘야 한다는 이른바 '미란다 원칙' 을 34년 만에 재확인했다.

연방대법원은 이와 함께 미란다 원칙에 위배되는 연방 범죄통제법 조항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날 7대2의 다수결로 "미란다 원칙은 헌법에 근거를 둔 것으로 의회에서 제정된 법령으로 뒤집을 수 없다" 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미란다 원칙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윌리엄 H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미란다 원칙은 미국 문화의 일부분" 이라며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은 경찰의 일상적 관행으로 뿌리내려왔고 이로 인해 검찰관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미란다 원칙이 용의자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 경찰의 강압과 비행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해 온 빌 클린턴 행정부와 민권운동가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미란다 원칙이 효율적인 수사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불필요한 원칙이란 수사 관계자들의 오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1968년 연방의회에서 통과된 통합범죄통제법 제3501조는 위헌으로 판결했다.

범죄통제법 제3501조는 수사관이 미란다 원칙을 통보하지 않은 경우에도 자백에 임의성이 있다면 증거로 채택할 수 있도록 허용한 조항이다.

이 조항은 68년 제정된 뒤 미란다 원칙에 위배돼 오랫동안 사문화 돼 왔으나 지난해 버지니아 리치먼드의 제4 연방순회법원이 은행강도 사건 재판에서 이 조항을 적용하면서 미란다 원칙에 대한 논쟁이 재연됐다.

재닛 리노 법무장관은 이날 판결에 대해 "미란다 원칙의 재확인으로 인해 앞으로도 계속 형사사법 체제의 공정성을 지켜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 미란다 원칙이란〓경찰관.수사관 등이 범죄 용의자를 체포할 때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는 원칙이다.

63년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어니스트 미란다의 재판 결과 판례로 확립됐다.

당시 21세였던 미란다 피고인은 범행을 자백했다. 하지만 그의 변호인들은 이같은 권리가 무시됐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켜 66년 5대4의 다수결로 연방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이끌어 냈다.

이에 대해 수사 관계자들은 미란다 원칙이 때때로 범죄자를 풀어주는 결과를 빚기 때문에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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