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가타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재작년 상영된 공상과학영화 '가타카(Gattaca)' 의 제목은 인간의 DNA를 구성하는 네 종류의 염기, 즉 구아닌(G).아데닌(A).티민(T).시토신(C)의 머리글자에서 따왔다.

영화의 줄거리는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 를 연상케 한다.

우주비행사가 꿈인 주인공 빈센트는 열성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죄' 때문에 처음부터 하층계급에 편입된다. 미래사회는 발달한 유전학을 근거로 인종.성차별 대신 유전자 차별을 제도화한 것이다.

청소부로 일하면서도 꿈을 버리지 못한 빈센트는 DNA 암거래상의 중개로 일류 수영선수로 활약하다 사고로 반신마비가 된 존과 계약을 하고 그의 유전특징을 사들인다.

존이 제공한 머리카락.혈액.피부각질을 우주항공회사 가타카에 제출, 무난히 입사에 성공한다.

우여곡절 끝에 빈센트는 드디어 우주로 떠나고, 완벽한 유전자의 실제 주인인 존은 자살을 택한다. 섬뜩하면서도 착잡한 '있을 수 있는 미래' 다.

우리들의 유전자가 낱낱이 파악된다면 열성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결혼인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보험회사는 필경 보험가입을 꺼리거나 엄청난 보험료를 요구할 것이다.

빈대가 먹는 유일한 음식인 혈액에는 비타민 B군(群)이 없다.

그런데 빈대의 뱃속에는 달걀 모양의 작은 알맹이 한 쌍이 있고, 이 속에는 비타민B를 만들어내는 세균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주인인 빈대에게 '집세' 를 내고 있는 셈이다. 진화 과정에서 이뤄진 빈대와 세균의 자연스러운 공생에 만일 인간의 유전자조작이 가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단, 지난달 독일 제나대학 연구진은 '유전자조작(GM)농작물의 유전자는 이를 섭취한 동물에게도 옮겨질 수 있다' 는 연구결과를 보고했다.

유전자 조작된 유채밭에 있던 벌의 배설물에 들어 있던 박테리아를 조사해 보니 유채와 같은 조작된 유전자를 갖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미 많은 농작물이 그런 것처럼 유전자 조작은 특정 종(種)을 겨냥한 집중화.획일화로 이어져 생물 다양성을 결정적으로 해칠 수 있다.

클로펜버그 같은 학자는 이미 10여년 전 "종들간에 유전적 물질을 이동시킬 수 있는 능력은 새로운 변이를 가져오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종들을 획일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고 경고했다.

인간유전정보 '지놈지도' 초안이 그제 발표됐다. 이번 발표가 암시하는 갖가지 부작용에도 신경쓰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인간유전자도 조작대상이 될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미래의 운동권은 '인간유전자 다양성' 을 투쟁목표로 삼을지도 모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