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며느리의 가사 분담 애교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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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깨를 주무르는 며느리의 손길에 손자들 재롱까지 더하면…. 안 녹아날 시어머니가 있을까.

한 집안의 맏며느리. 그러면서도 남편과 나이 차가 많아 손아래 동서보다 여덟살 아래요, 막내 시누이보다도 네살 아래. 시어머님은 음식의 본고장이라는 전라도 순천에서 한정식집을 운영했던 분.

이 주부의 추석나기는 어떨까. 안좋은 조건은 다 갖춘 것 같은데. 맏며느리라 명절 준비하는 책임은 도맡아야 할 터. 그렇다고 나이 많은 동서.시누이에게 일 시키기는 껄끄러울 게고. 더구나 집에서 메주까지 직접 쑤는 시어머니 눈에 들게 상을 차리려면…. 추석 내내 벙어리 냉가슴 앓으며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전혀 아니었다. 주인공은 주부 김지현(28.인천시 남구 주안5동)씨. 그의 명절은 '오 해피 데이'였다.

"동서.시누이는 물론이고 남편과 시아버님까지 일을 도와주세요. 그래서 명절이면 한가족임을 더 절절히 느끼죠."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1998년 결혼하고 새색시 시절인 처음 몇 년간 명절 준비는 시어머니와 자신, 그리고 동서만의 몫이었다. 남자들은 물론 시누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연히 명절이 지나면 파김치가 됐다.

그런 상황을 바꾼 비결은 '애교+칭찬'. 예컨대 시누이에게 "내가 깎은 과일은 왜 이 모양이지. 고모가 하면 예쁜데. 아이 참, 또 꾸중 듣겠네. 고모가 좀 도와주실래요?"하는 식이다.

시어머니 서동금(62)씨는 "우리 며늘아가 애교는 못 당해. 좀 뭐라 그러려다가도 웃음이 나와서…"라고 말했다.

일에 지친 동서에게 "애아빠가 동서 음식솜씨 좀 배우라고 나한테 매일 투정이야"라면 김씨가 할 음식까지 만들어 준다고.

2000년 설을 앞두고는 약식에 넣을 밤을 서투르게 치는 모습을 보던 시아버지가 "그렇게 까서 되겠느냐"고 한마디 던졌다. 그러자 바로 나온 소리가 "어머, 아버님, 좀 가르쳐 주세요." 그 후로 시아버지는 명절 밤까기 담당이 됐다.

만두피와 송편 반죽은 남편 몫으로 넘겼다. 시어머니가 반죽하는 것을 빼앗다시피 해 남편에게 줬다. 시어머니가 '아들에게 일을 시키다니'하는 표정을 짓자 얼른 주워섬겼단다. "힘든 일 자꾸 하시면 나중에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하세요. 힘센 남자들이 해야죠."

이런 식으로 몇 번 명절이 지나니 사람들마다 일 담당이 생겨 모두 알아서 하게 됐다.

결혼한 지 만 6년. 그동안 가족들이 일을 돕게끔 하면서 자신도 열심히 익혔다고 했다. 언제까지 '나는 서투르다'고 핑계만 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다. 지난해는 솜씨 테스트도 할 겸, 시부모님과 남편을 낚시여행 보내고 동서와 달랑 둘이서 추석 준비를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시어머니 말씀, "내가 손떼도 되겠네."

올 추석엔 손에 물 안 묻히던 남편이 설거지를 하도록 만들 참이란다. 과연 이번엔 어떤 애교작전이 펼쳐질까.

글=권혁주 기자<woongj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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