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옥죄는 자금경색] 7월 이후엔 괜찮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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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올해를 넘기는 기업은 내년 이후도 거의 모두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 이달 말을 넘기는 기업 중 80%이상은 올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

서근우 금융감독위원회 제2심의관은 6월의 돈 가뭄을 이렇게 분석했다.

H증권 기업팀장은 "회사채.기업어음(CP) 만기연장은 6대 이하 그룹엔 사활문제다" 라며 "만기연장 없이 살아남을 기업은 한두 곳에 불과하다" 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최근 돈가뭄은 정부.기업.시장 등 서로가 서로에게 신뢰를 잃어 생긴만큼, 방치할 경우 기업과 금융기관을 우량.불량 구분없이 무너뜨릴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 "7월이면 해갈" 〓정부는 7월이면 돈 가뭄이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은행의 채권투자펀드가 이르면 1일부터 가동된다. 이 펀드는 10조원의 기금 중 7조원을 풀어 중견그룹의 회사채를 사들일 계획이다. 다음달 중 만기가 돌아오는 5조원은 충분히 소화가 가능하다. 8월부터 11월까지는 만기 회사채가 월평균 1조~2조원대로 준다. 수치로만 보면 6월의 극심한 돈 가뭄 재발은 막을 수 있다.

잠재부실을 털어낸 투신권은 물론, 6월말 결산이 끝난 은행들은 한결 여유있게 자금운용을 할 수 있게 된다.

투신.은행의 새 상품에도 돈이 들어와 기업 자금난에 물꼬를 트게 된다. 은행의 3개월짜리 단기신탁은 회사채.CP에 50%이상을 투자한다. 투신의 주식형 사모펀드와 비과세 수익증권이 본격 판매되면 투신에도 숨통이 트인다. 단기적인 돈 가뭄은 사라진다.

이와 관련, S은행 자금담당부장은 "6월말 결산 후엔 몇달간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 걱정이 사라져 회사채 인수 등을 확대할 수도 있을 것" 이라며 "그러나 정부가 등 떠민다고 한계기업에까지 무조건 자금지원을 할 수는 없다" 고 말했다.

◇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정부 처방대로 7월부터 시장이 호전된다해도 언제든 '신용경색증' 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송치영 국민대 교수는 "정부가 당장의 신용경색을 뚫기 위해 무리하게 은행 등을 몰아붙이면 나중에 더 큰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 며 "대증요법보다는 부실 기업.금융회사의 퇴출 기준을 명확히 하는 등 근본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고 강조했다.

H은행 자금부장은 "채권펀드에 1천억원을 출연하면 BIS비율이 0.02~0.03%포인트 꼴로 떨어진다" 며 "이런 일이 반복, 장기화되면 멀쩡한 은행까지 망가질 수 있다" 고 말했다.

◇ 우선 순위를 분명히 가려야〓한정된 재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은행합병도 하고 투신도 클린화하면서 종금사며 중견기업을 모두 살리자는 정부의 발상은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는 요즘 정부 정책을 "모든 것을 떠안고 가려다간 모두 망할 수도 있다" 고 지적했다.

금감위 고위관계자조차 "외국인들은 요즘 한국정부 정책이 1997년 외환위기 직전 기아.한보그룹을 모두 살리려던 때와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며 "썩은 살을 도려내야 새살이 나오듯 부실기업은 시장에 맡겨 퇴출시켜야 한다" 고 말했다.

김진영 삼성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시장을 핑계로 죽을 기업을 억지로 살려선 안된다" 며 "이는 결과적으로 시장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해 신뢰상실과 신용경색으로 이어진다" 고 지적했다.

이정재.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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