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 산책]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사람의 심사란 참 묘하다. 매년 이맘때 이곳 임진강변(파주시 파평면 장파리)에 서면 그리 슬퍼보이던 하늘빛이, 남북간 분위기 때문인지 뭔가 한바탕 쏟아낼 것만 같이 잔뜩 찌푸렸는데도 오히려 푸근하기만 하니 말이다.

비릿한 밤꽃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그동안 남북을 넘나들며 비웃던 바람마저도 풀이 죽어있는데, 강을 가로질러 진동면 용산리를 잇는 리비교만이 묵묵히 강물을 굽어보고 있다. 한국전쟁중에 놓인 이 다리는 대전전투에서 전사한 미육군 중사 조지 D 리비(Libby)의 이름으로 문패를 삼고 있다.

곤경에서 구해준 '은인' 에 대한 기림이리라. 광복후 군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반세기 넘어 이어지고 있는 미군과의 인연 - . 최근 간간이 그네들과의 마찰이 빚어지고 있지만 싫든 좋든 우리네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 그들과의 만남이 극적인 남북화해 무드와 더불어 오늘에 새롭다.

사실 이땅 대부분의 민초들이 미군의 존재를 실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난리를 겪으면서였고, 따라서 한참동안 미군이 미국의 전부인줄 알았었다.

우리와 다른 생김새에다 알아들을 수없는 말씨하며, 흑백이 어우러진 그네들을 처음엔 신라인들이 처용을 보면서 그랬듯이 두억시니쯤으로 여겼을 법하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서도 먹을 것.입을 것을 대주자 그들은 어느새 '천사' 가 돼버렸고 미국은 젖과 꿀이 넘치는 '엘도라도' 로 여겨졌다.

실제 그들 곁에 가면 먹을 것.입을 것이 생겼다. 변변한 직업이 없던 당시 장정들은 경비원이나 쓰레기 처리로, 아낙들은 빨래 등 허드렛일로 돈을 벌 수 있었다.

또 부대 주변엔 '토미엄마' 가 된 오갈 데없는 누이들과 '쇼리' 들이 바글거렸다. 라디오에선 '슈샨 보이' 가 흘러나오고… .

어디 그 뿐이랴. 미군부대와 훨씬 떨어진 곳에 사는 까까머리들도 학교에서 급식으로 나눠주는 '악수표' 분유와 강냉이죽으로 허기를 채우면서 미국을 배우기 시작해, 어쩌다 훈련나온 미군을 만나기라도 할라치면 "기브 미 쪼꼬렛" "기브 미 껌" 같은 생활영어(?)를 거침없이 읊어대곤 했다.

오죽 배가 고파 그랬을까마는, 자동차 연기가 얼마나 구수하다고 아예 배기통에 코를 들이대고 킁킁대던 모습이라니. 어른들도 꿀꿀이죽 한그릇이면 진량이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미' 자나 '양' 자가 붙으면 무조건 최고요, 선(善)으로 여기는 풍조가 생겨날 수밖에. PX를 통해 흘러나온 술.담배는 물론 가전제품.화장품.의약품 등 미제라면 무엇이든 불티나게 인기가 높아 '미제 아줌마' 들에 의해 내로라하는 층의 신분 과시용으로 사용됐다.

또 미군부대 '짬밥' 에서 나온 햄.소시지 찌꺼기는 '부대고기' 로 격상되고, 바둑이보다 튼실하고 날렵한 '도꾸' 에겐 어김없이 '쫑' 이니 '베스' 란 이름이 붙었다.

한창 까불던 때 '사지 쓰봉' 에 물들인 야전잠바를 걸치고 '워커' 바람에 다방에 들어가 "에그 후라이 앤 위스키 다블" 을 외치면 '레지' 들이 사족을 못쓰고 달려들던 모습이 선하다(이같은 '미제병' 에 대한 반성일까. 지금도 우리 게에선 어쭙잖거나 가당치도 않은 말을 하다간 대번에 "영어하지마" 란 관용적인 호령을 듣기 십상이다).

결코 유쾌하지는 않지만 잊혀지지 않는 일들이다.

이만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