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기 왕위전] 조훈현-이세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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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李 3단 25로 곧장 젖혀 전투 개시

제2보 (18~39)〓이세돌3단의 기풍은 어딘지 曺9단을 닮았다. 曺9단과 같은 눈부신 스피드는 없지만 때가 되면 살쾡이처럼 목털을 세우고 부스스 일어서는 모습이 영락없이 닮았다.

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물러서지 않는다. 기풍이 비슷하면 실력 차이가 조금만 나도 상대가 안되는 법. 그래서 이세돌은 프로가 된 이후 曺9단과 다섯번 만나 연전연패했다.

그러나 지난 연말 5패 끝에 한판을 건졌다. 이것은 의미심장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18부터 24까지는 정석이다. 25로 곧장 젖혀 전투를 개시한 것이 이세돌 스타일. 28에는 29로 육박해 상하의 백을 노린다.

반면 32는 조훈현 스타일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가' 로 두텁게 막아둘 것이다. 그러나 曺9단은 조금 엷더라도 터를 크게 잡는다.

엷음이 문제지만 그건 남보다 뛰어난 전투능력과 임기응변으로 커버한다. 曺9단의 이런 '과속' 은 으레 통과돼 왔다.

꾹 참고 기다리는 이창호9단에게 결정적인 덜미를 잡히기도 했지만 소소한 경우 아무도 이 과속을 응징하기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도 감히 32를 '나쁜 수' 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판에선 이 32가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나중에 나오지만 전판을 뒤엎는 대 전투가 이 32의 희미한 빈틈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35, 37로 아낌없이 집을 지어준 것은 33쪽의 배후를 엄호하기 위해서다. 그다음 39로 점프해 백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흑도 엷은데 이렇게까지 나오느냐 싶지만 이세돌의 장기도 바로 이런 '위태로움 속의 전투' 에 있다.

曺9단은 자신을 극한 상황까지 몰고 가는 스타일이다. 공격보다는 타개에서 그런 아슬아슬함을 즐긴다. 그러니 이 두사람은 전투에 관한한 궁합이 맞는다고 할 수 있다. 필연적으로 싸움이 벌어지게 돼 있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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