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의사들 선을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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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민 건강을 위해서.'

의료계가 집단폐업을 시작하면서 내세운 논리다. 그러면서 김재정(金在正) 의사협회 회장은 "환자들은 정부가 마련한 응급의료기관을 이용하면 된다" 고 말했다.

서울 시내 모 종합병원에는 '폐업기간 중 아프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라는 안내문이 나붙었다.

그러나 의료공백은 엄청난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신생아와 노인이 숨졌고, 병원을 전전하다 의식불명에 빠진 환자도 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어렵다.

의료계는 잘못된 의약분업이 국민건강을 해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물론 맞는 부분도 있다. 의약분업은 5천만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약사들의 임의조제 가능성이 상존해 진료권이 침해받는다는 의사들의 문제제기는 일리가 있다.

의료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문제 조항을 고치지 않으면 국민 건강을 해친다. 그래서 문제를 고치자고 주장하는 건데 어떻게 집단이기주의냐" 고 항변한다.

지난해 11월, 올해 2, 4월 세차례 휴진했을 때는 국민들이 불편하더라도 그냥 참았다. 의사들을 크게 비난하지 않았다.

건강연대 강창구(姜昌求)정책실장은 "그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저러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란 공감대가 있었고 '의약분업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뭔가 문제가 있구나' 라고 이해하려 했다" 고 말했다.

그는 "여기까지다. 이 선을 넘어서면 곤란하다. 그러면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은 퇴색하고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는 주장도 동의할 수 없다" 고 덧붙였다.

정부가 18일 내놓은 대책이 의료계 입장에서는 미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기관에 대한 금융.세제지원, 약사법 3개월 후 개정, 전공의 처우개선과 의료분쟁 조정대책 등 전향적인 대책도 있다.

약사법을 지금 당장 개정하고 의약분업 전면 재검토를 위한 유보조치 등은 초법적인 요구다.

성균관대 권혁주(權赫周)교수는 "집단폐업은 의료계가 지금까지 국민들로부터 따놓은 점수를 다 까먹을 것" 이라면서 "의약분업의 유보만을 주장할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정부와 협상에 나서 정책 논쟁을 벌여라" 고 주문했다.

40대의 한 남자환자는 지난 19일 종합병원에서 강제퇴원당하면서 "환자 생명을 담보로 얻고자 하는 게 무언지. TV드라마에 나오는 허준의 모습이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 고 씁쓸해 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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