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술자리' 참회시 쓴 박노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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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바탕 돌바람 치던/광주(光州)가 잠잠해지고/이제 바깥이 가라앉으니/얼음처럼 안쪽을 성찰할 때//집을 떠나 말을 끊고 삭발을 하고/열흘째 단식으로 휘청이는 한 걸음 한 걸음/북한산을 오른다/…/한낮 산길에 뻐꾸기는 울고/산비둘기 울음소리 구구우 구우 구우/아 나는 무슨 죄가 이리 많은가!/말라가는 몸으로 홀로 걷는 여름산이 쓸쓸하다'

5.18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 전야제 행사 후 '386세대' 국회의원 당선자들과 함께 술좌석에 참석했다 여론의 호된 비난을 받았던 박노해 시인. 그가 최근 '조용히 몸을 말리며' 라는 시를 써 친우들에게 돌렸다.

반성할 것은 철저히 반성하는 과정에서 교훈을 얻어 굽힘 없이 새로운 진보운동으로 나가자는 뜻에서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그 일' 이 있은 후 박시인은 2주일간 삭발 단식하며 내면을 성찰했다.

이중적 명분주의와 흑백논리가 광주 술좌석 사건을 사실 이상으로 매도하며 보수.개혁의 개념 자체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해도 결코 자신의 신중치 못한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 그 반성 결과 아무리 '좌.우' 가 요동쳐도 꿈쩍 않는 새로운, 건강한 진보 주체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잘못을 뿌리까지 말리고 나면/몸 안에 맑고 착한 기운이 살아날거야/아빤 결코-죽지 않아//가파른 암벽 길로 한 걸음 한 걸음/어진 목숨의 봉우리 인수봉(仁壽峰)에 오른다/아 나는 무슨 죄가 이리 많은가!/산바람은 솨아아 솨아아 나를 말리고'

통일을 향한 몸통, 주체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좌든 우든 과거의 잘못은 스스로 뿌리까지 반성해야 한다고 그는 다짐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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