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조정권 '고요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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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

누가 이 안을 쓸고 또 쓸었을까

눌러 앉히고 싶어

이 고요를 닫아 건다

2.

안을 담아

밖으로 내놓는다

안을 열어놓고

활짝 대한다

안도 시끄럽다

3.

안을 열어놓고

이 고요 잠근다

밖이 가득하다

- 조정권(51)

'고요시편(詩篇)'

안과 밖이 있어 시끄러운 세상. 더욱 안과 밖이 있어 오랜 면벽수행(面壁修行)을 끝낸 스님의 법어처럼 조정권은 안과 밖을 놓고 일갈(一喝)한다.

"안을 열어놓고 이 고요 잠근다" 고. 그래 잠글 수 있을까. 고려나 조선조의 저 고승(高僧)들에게서나 듣던 게송(偈頌) 한 편을 여기서도 듣는다. 나는 마음을 잠그는 빗장이 없는데.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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