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오페라 '루치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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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1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이 오른 도니제티의 오페라 '루치아' (지휘 다니엘레 아지만.연출 김홍승)는 주역 가수들의 개인기 못지 않게 잘 다듬어진 앙상블과 합창이 돋보였던 무대였다.

특히 2막의 6중창 '누가 이 분노를 막을 수 있으랴' 는 3막의 '광란(狂亂)의 장면' 에 버금가는 감동을 선사했다.

데뷔무대로 관심을 모은 소프라노 정현진(루치아 역)은 콜로라투라의 시금석(試金石)으로 유명한 '광란의 아리아' 에서 최고음과 세밀한 테크닉의 열세를 적절한 음색 구사와 탄탄한 음악성으로 커버했다. 연기와 표정을 곁들인 목소리로 묘사해낸 여주인공의 내면 심리는 극적인 재미를 더해주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주역 가수의 발굴은 이번 공연이 거둔 최대의 수확이었다.

루치아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끝내 자결하고 마는 에드가르도 역으로 출연한 테너 신동호는 멜로디의 곡선을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성악가다. 그는 초점을 잃지 않는 발성과 악센트.피아니시모의 적절한 배합으로 가슴에 사무치는 호소력을 발휘했다. 특히 3막 2장의 아리아 '내 조상의 무덤에서' 는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루치아의 오빠 엔리코(바리톤 우주호)의 명연기와 오케스트라를 관통하는 풍부한 성량도 '루치아' 가 소프라노의 전유물이 아님을 웅변해 주었다.

전진 배치된 무대는 음향반사판 구실을 제대로 해냈지만 깊이는 없었다. 화려한 의상이나 분위기를 강조한 조명에 비해 그림 한 점도 없는 밋밋한 벽으로 둘러싸인 엔리코의 거실(2막)은 다소 성의없는 무대였다.

'루치아' 는 20일 오후 7시30분 마지막 공연을 한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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