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사자성어의 달인 삼성 감독 ‘묵묵부답’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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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프로농구판을 즐겁게 했던 안준호(사진) 삼성 감독의 전매특허 한자 사자성어가 올 시즌엔 나오지 않는다. 시즌 전 중국 전지훈련에서 “올 시즌은 군웅할거다”고 한 게 전부다. 20일 LG와 경기를 앞두고는 기자들을 피했다. 안 감독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 경기 외적으로 감독들끼리 설전을 벌이자. 내가 최고참이니 발 벗고 나서겠다”고 했다. 프로농구 인기를 위해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팀이 계속 주춤하니 가시 돋친 말을 내뱉을 힘이 사라진 듯하다. 평소 웃는 얼굴로 모든 기자와 악수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안 감독은 요즘엔 말수가 줄었다. 그는 경기 5분전 코트에 나왔고 경기 내내 서 있었다. 기자회견장에서도 “리바운드에서 뒤졌다. 3연패를 끊어야 하는데”라고 짧게 말한 뒤 자리를 떴다.

삼성은 현재 6위다. 플레이오프에는 무난히 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즌 전 강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받은 터라 이 정도 성적에 만족할 수 없다. 삼성은 최고 외국인 선수 테렌스 레더와 귀화 혼혈 선수 이승준, 여기에 슈터 이규섭과 이상민·이정석 등 황금 가드진이 버티고 있다. 시즌 초반 중위권으로 시작했지만 조직력만 갖추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으로 여겨졌다. 모두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했으나 오히려 더 나빠졌다. 삼성은 3라운드에서 3연패를 반복하며 3승6패에 그쳤다. 시즌 성적은 13승13패다. 1위 모비스와 승차는 6경기 반까지 벌어졌다.

사자성어와 함께 사라진 것이 또 있다. 4쿼터 접전 상황이 되면 플로어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턱을 괴는 안 감독 특유의 자세가 자취를 감췄다. 시야가 낮아져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이 눈에 잘 안 들어오지만 접전에선 늘 그런 자세로 지시를 내렸고 그게 먹혔다. 최근 삼성은 3쿼터 중반 경기가 기울어 무릎 꿇을 기회가 없었다. 안 감독은 지금 ‘노심초사’하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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