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즈 ‘선수 세일’ 제2 쌍방울 사태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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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프로야구 히어로즈가 본격적인 ‘선수 팔기’에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히어로즈는 18일 간판 외야수 이택근(29)을 LG에 보내고 현금 25억원과 2군 선수 두 명을 받는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그러나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히어로즈가 절차를 위반했다며 트레이드 승인을 보류했고, 야구계에서는 ‘제2 쌍방울’ 사태로 흥행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선수 팔아 운영자금 마련=히어로즈의 현금 트레이드는 일찌감치 예견돼 있었다. 다른 구단들이 모그룹으로부터 안정된 후원을 받는 반면, 히어로즈는 지난해 창단 후 메인 스폰서를 잡지 못해 2년간 극심한 재정난을 겪었다. 이 때문에 히어로즈가 거액의 현금을 받고 간판 선수들을 팔아 운영자금을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장석 히어로즈 사장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팀 내에 포지션이 겹치는 선수들이 많다”며 트레이드에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밝히기도 했다.

‘선수 세일’의 첫 구매자는 최근 7년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LG였다. LG는 현금 25억원과 포수 박영복, 외야수 강병우를 히어로즈에 주고 이택근을 받아들였다. 이택근은 2003년 데뷔 후 통산 타율 0.310에 55홈런을 기록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주역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누가 봐도 선수 간 수준이 맞지 않는 트레이드로 LG가 히어로즈에 운영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히어로즈의 현금 트레이드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겨울 KBO의 트레이드 승인 거부로 무산됐던 좌완 투수 장원삼의 삼성행이 이번에는 성사될 것이 확실하고, 올 시즌 13승을 올리며 에이스로 활약한 이현승도 곧 두산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제2 쌍방울 사태 우려=야구계에서는 히어로즈가 선수 팔기를 계속할 경우 1990년대 말 프로야구판을 뒤흔든 ‘쌍방울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당시 쌍방울은 극심한 재정난으로 박경완·김기태·김현욱 등 주축 선수들을 대거 현금 트레이드해 구단의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다른 구단과 심각한 전력 불균형을 이루며 프로야구 전체의 흥미와 품위를 떨어뜨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히어로즈를 상대로 선수 영입을 노리는 다른 팀들도 프로야구의 발전보다는 구단 이기주의에만 매달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프로 출신 야구인들의 모임인 일구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히어로즈가 특급 선수들을 비상식적으로 트레이드하는 것을 계속 방치, 묵인한다면 자칫 프로야구의 공멸을 자초할 것이다. 나머지 7개 구단은 당장의 전력 향상보다는 선수 육성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KBO는 “히어로즈는 프로야구 가입금 120억원을 완납할 때까지 KBO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트레이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히어로즈가 가입금 최종분인 36억원을 KBO에 내지 않고 서울 연고지 분할 보상금 명목으로 LG와 두산에 15억원씩 보내줬다”며 절차상의 하자를 이유로 트레이드 승인을 보류했다. 야구인들은 이번에야말로 KBO가 특정 구단에 끌려 다니지 않고 8개 구단의 이해 관계를 원활하게 조정하는 임무를 다해야 한다며 유영구 총재를 지켜보고 있다.

◆부실투성이 구단=히어로즈는 투자회사인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를 등에 업고 창단했다. 자금의 안정성이나 출처를 전혀 알 수 없는 조직이었다. KT·STX·농협 등이 히어로즈를 인수하겠다고 나섰으나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가장 큰 이유가 ‘구단의 적자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프로야구 최초로 ‘네이밍 마케팅’을 한다며 우리담배를 끌어들인 것도 실패로 돌아갔다. 히어로즈는 지난해 6월 1차 가입금 납부를 둘러싸고 KBO와 줄다리기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담배는 기업 이미지에 손상을 입었다며 스폰서를 철회하고 말았다. 이후 구단 재정에 대한 우려는 끊이지 않았다. 목동구장 임대료 체납을 비롯해 선수단 계약금 미지급, 원정 숙박료 체납 등이 드러났다.

히어로즈는 메인 스폰서 유치에 실패한 뒤 서브 스폰서 중심 운영으로 바꿨다. 4차 가입금을 완납한 히어로즈는 주축 선수들을 팔아 넘기며 부실한 구단 재정을 메워가고 있다.

신화섭·오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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