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클럽] 부르뎅 주한 프랑스 대사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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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남북정상회담 취재차 한국에 오는 본국 기자단을 맞이하랴, 회담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수집하랴 요즘 눈코뜰새 없이 바쁜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마리즈 부르뎅(35)공보관.

그녀가 잠시 휴식을 취할 때마다 보는 것이 있다. 바로 한국인 남편.두살바기 딸아이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다.

1998년 현직에 발탁된 부르뎅은 한국어가 매우 유창하다. 14년간 한국에 살아온 덕도 있지만 프랑스에서부터 한국어를 공부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17년전 파리1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녀는 변호사가 꿈이었다. 그러나 딱딱한 법전에 점점 흥미를 잃은 부르뎅은 2학년 때 우연히 한국어를 접하게 됐다.

"동양 언어를 배워보고 싶어 중국어나 일본어를 수강신청하려 했죠. 그런데 모두 마감되고 한국어만 남았더라구요. "

그래서 '한번 배워나 보자' 며 신청한 것이 그녀의 삶 자체를 바꾸게 된 것. 부르뎅은 한국의 전통음악.문학.역사 등을 배우며 "동료 12명 중 아마 내가 제일 열심히 공부했을 것" 이라고 자신할 정도로 전공보다는 한국과 한국어에 빠져들었다.

결국 86년 주불 한국대사관이 선정하는 외국인 장학생에 뽑혀 서울대 법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파리에서는 학생들이 공부만 하기 때문에 정붙일 곳이 없었지만 한국은 달랐어요. 학생들간에 아껴주고 신경써 주는 모습이 너무 좋았죠. "

자나깨나 한국어 법전을 끼고 산 덕분에 3년만에 석사학위를 따낸 부르뎅은 이후 코리아헤럴드지가 발간하는 프랑스어 잡지 에디터로 활동했다.

주말이면 프랑스문화원에서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던 부르뎅은 93년 남편 명노신(35.무역회사 근무)씨를 이곳에서 만났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明씨가 문화원에 자주 들르면서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던 이들은 친구 생일파티에 우연히 합석하면서 서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5년간의 열애 끝에 98년 결혼했다.

이들 가족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와 한국어다. 남편은 한국어로, 부르뎅은 주로 프랑스어로 말하는데 "딸애가 두가지 언어를 기막히게 잘한다" 고 자랑했다.

부르뎅이 현재는 대사관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지만 지난 90년대에는 TV에도 곧잘 얼굴을 내보였다.

코미디프로 '봉주르 부르뎅' .드라마 '좋은걸 어떡해' 등에 출연, 재능과 끼를 선보였다.

"나도 시댁에 가서 제사 지내는 어엿한 며느리" 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문화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부르뎅은 "한국생활을 하며 얻은 소중한 것들이 프랑스와 한국의 가교 역할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으면 한다" 는 소망을 밝혔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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