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여성 파워] 경리사원서 벤처 창업자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63면

"인터넷 업계에선 대학 간판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독창적 사고가 있어야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죠."

자동차 전문사이트 리베로(http://www.libero.co.kr) 멀티미디어 팀장 김순나(26.여)씨는 평소 생각을 이렇게 말한다.

그는 1992년 고교 졸업 뒤 한 대기업의 경리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일거리는 그야말로 단순 사무보조였다.

하지만 CD롬을 제작하는 새 사업부서로 옮겨 컴퓨터 그래픽 업무를 알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쓰는 프로그램을 어깨 너머로 배웠지요. 어린 나이에 회사에 들어가 학력차별 등 사회의 현실을 알게 되면서 실망이 컸는데 컴퓨터 공부를 하면서 '아 나도 뭔가를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

97년 회사를 그만두고 계원조형예술대 멀티미디어과에 들어갔다. 그는 남들보다 대학 입학이 5년이나 늦은 만큼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학비를 벌고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대학 2년 내내 CD롬 타이틀 제작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인터넷 붐이 일던 때라 일거리도 넘쳐났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었지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내 실력을 쌓기 위해 공부했고, 그것이 바로 현실에 적용된다는 게 너무 놀라웠죠."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마치고 뜻맞는 동창 2명과 인터넷 회사를 창업했다. 전공을 살려 홈페이지와 홍보용 CD롬 제작 대행업체를 차린 것이다.

그러던 중 지난 겨울 한 고교 선배로부터 자동차 전문 인터넷 회사를 함께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와 이를 수락했다. 그를 포함해 모두 6명이 2인용 책상 하나에 컴퓨터만 달랑 놓고 창업 준비에 들어갔다.

콘크리트 바닥에 라면 박스를 깔아놓고 새우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요즘 그는 30여명이 일하는 회사의 어엿한 창업자 팀장으로 회사의 간판인 홈페이지 기획과 프로그램 개발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의 열정과 능력은 모교에서도 인정을 받아 이번 학기부터 계원조형예술대에서 4학점짜리 강의를 맡게 됐을 정도다.

업무와 강의 준비를 병행하느라 힘든 적도 많았지만 풋풋한 후배들로부터 받는 삶의 자극이 자신을 게으르지 않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는 인터넷에 뛰어든 여자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많다.

"여성의 꼼꼼함이 강점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개성적 사고로 기존의 틀을 확 바꿔서 새로운 것을 만들 줄 알아야 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저돌적 사고가 여성에게 필요합니다."

우상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