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20%가 뽑는 구청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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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8 재.보궐선거' 가 치러진 8일 낮 12시 서울 이촌동 충신교회 앞 상가 2층에 마련된 이촌1동 제1투표소. 유권자는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새 용산구청장을 결정할 투표함을 사이에 두고 선관위원 5명과 여야 참관인 2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0여분 후 60대 초반의 한 여성 유권자가 들어오자 선관위원 한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볼펜을 꺼내들고 투표인수를 적는 메모지에 '바를 정(正)' 자를 채웠다.

유권자수 3천5백14명인 이곳 투표소에서 6시간 동안 투표한 유권자는 불과 3백61명. 한 선관위원은 "그나마도 절반이 50대 이상" 이라며 "유권자들이 출근 전에 투표하기를 기대했지만 오전 8시까지 1백명도 투표하지 않았다" 고 걱정했다.

5시 현재 투표율은 21.3%. 구청직원은 "그런 투표율 갖고 민선(民選)단체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고 씁쓸해 했다. 선관위측은 "지방의원 선거 투표율은 단체장 투표율보다 낮다" 고 덧붙였다.

한 관계자는 "용산구민 10명 중 3명도 채 안되는 사람들이 투표해 이중 많아야 2명이 선택한 사람이 용산구 살림을 책임지게 됐다" 고 말했다. 대표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용산구청의 올 예산은 9백85억원. 비슷한 투표율을 보인 송파구의 올 예산은 1천3백42억원이다. 이 돈이 구청장의 판단에 따라 집행된다.

구청공무원들의 인사권은 물론 건축 허가, 업소별 위생점검, 도로교통 관련 일부 권한도 다 구청장의 몫이다.

서울시청의 한 고위관계자는 "유권자들이 내는 세금으로 살림을 살아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의 투표율이 점점 낮아져 지방선거의 본래 취지가 흐려지고 있다" 고 걱정했다.

이날 투표한 한 유권자는 "시민들이 자기가 낸 세금을 쓰는 사람을 뽑는 행사에 이렇게 외면할 수 있느냐" 며 "주민들의 무관심으로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제대로 뽑지 못하면 결국 피해는 유권자들에게 돌아온다" 고 우려했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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