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전망대] 돈 권하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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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마카오의 도박왕 스탠리 호(80)는 일생을 도박업에 걸어 한 나라를 사들일 수 있는 부를 움켜쥐었다.

마카오의 도박장, 홍콩과 마카오를 왕복하는 여객선과 그 터미널 등 마카오와 관련한 거의 모든 게 그의 수중에 있다. 돈은 마카오에서 벌지만 홍콩에서 산다.

마카오행 페리가 떠나는 홍콩의 순탁(信德)빌딩에 집무실이 있다. 팔순에 접어들었지만 정력은 젊은이 못지않다. 부인이 네명이고, 자녀는 열일곱명이다. 지난해 6월 막내가 태어났다.

그런 그가 6일 입원했다. 치질 수술이 목적이다. 그런데 넷째 부인 량안치(梁安琪.38)는 홍콩 언론에 "차제에 정관수술도 하라고 권했다" 고 털어놨다.

이유는 남편이 다섯째, 여섯째 부인을 맞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일간지에 보도되고, 독자들은 또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다.

또 몇개월 전 홍콩의 한 공중파 TV는 그의 집에 있는 호화 가구와 값비싼 도자기 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일반인들이 평생을 모아도 사기 어려운 보물들로 넘쳐났다.

홍콩을 한번쯤 찾은 사람들이라면 홍콩에는 의외로 아늑한 별실이 딸린 식당이 드물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고급 식당이라도 왁자지껄한 가운데 먹는다. 그러나 모든 게 다 있다는 홍콩에 별실 딸린 식당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그런 식당은 모두 회원제다.

적게는 2억~3억원, 많게는 10억원씩이나 하는 회원권을 사야 한다. 심지어 안마실.미용실까지 회원제다. 회원권이 비싼 대신 회원은 '황제' 가 된다. 돈있는 자를 철저하게 우대하는 사회, 그 상징이 바로 홍콩의 회원제 문화다.

최근 홍콩 정부는 수천억원이 들어갈 공기정화 계획을 발표했다. 이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 이유는 시민을 위해서가 아니다.

정부가 내세우는 이유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홍콩에서 발길을 돌릴까봐' 서다.

얼핏 보면 어디나 비슷하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생판 다른 홍콩이 다가온다.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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