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 2010년의 방향을 제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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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참석하는 3자 회동을 제안했으며 민주당이 수용했다. 청와대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제안을 받아들여 이른 시일 내에 회담이 열려야 한다. 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참석하는 4자 회동이면 더욱 바람직하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들은 허심탄회하고 실질적인 논의를 통해 대립의 간극을 좁히고 국가 대사에 합리적인 의견을 모아야 한다.

2010년의 개막이 이제 보름도 남지 않았다. 2010년에도 많은 도전이 한국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는 경제 위기의 터널을 벗어나면서 ‘위기 후의 세계’를 놓고 가혹한 경쟁을 시작할 것이다. 한국은 주요 20개국(G20) 회의 의장국이란 책무까지 지고 있다. 핵과 6자회담, 권력 승계 같은 북한 문제는 내년에 변곡점을 맞을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경제 위기 극복의 와중에서 많은 현안이 서로 부닥칠 것이다. 내년 1월 중순 수정안이 나오면 세종시는 어느 쪽이든 결말이 날 것이다. 논란 속에 4대 강 개발은 본격적인 속도를 내게 된다. 노동법은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노사관계를 규정하게 된다. 내년 6월 지방선거는 명실공히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것이다.

2010년에는 이렇게 건너야 할 산과 강이 많다. 그런데 이에 대비하는 정치권의 모습은 우려와 불안을 넘어 충격적으로 실망스럽다. 민주당은 4대 강 사업에 반대하며 예산심의마저 거부해왔다. 2%의 예산에 목을 걸고 98%를 방기(放棄)해도 되는가. 민주당은 정권을 내주었다. 정권이 책임을 지고 국책사업을 하겠다면 일단 현실을 수용해야 한다. 총론은 정권에 맡기고 수질오염·예산낭비 같은 각론에서 철저한 대책을 추구하는 게 야당의 역할이다. 그리고 반대하려면 정상적인 절차로 반대표를 던지면 된다. 세종시 문제도 마찬가지다. 수정안을 본 후 결정해야 하며, 그때도 반대하려면 의회 내에서 정상적으로 하면 된다.

이 대통령은 국민과 야당에 대한 소통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 지난달 ‘대통령과의 대화’가 있었지만 국민은 궁금한 게 많다. 4대 강 개발만 해도 1~2개를 먼저 한 후 순차적으로 하면 안 되는지, “우리 기술을 믿어 달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지천(枝川)의 오염과 예산낭비를 막을 대책이 있는지, 대통령은 설명해야 한다. 세종시 공약 수정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야당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기억이 별로 없다.

세종시·4대 강에 묶여 개헌이나 행정구역개편·민생대책·대북정책 같은 주요 국가 대사는 관심권밖에 밀려나 있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의 회동은 막힌 곳을 뚫고 미래의 커다란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야당은 정략에 갇힌 마음을 열고, 대통령은 행여 자만으로 흐를 수 있는 마음을 접고, 대화에 임해야 한다. 지도자들의 회동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끝나면 대한민국 호는 2010년 불안한 항해를 시작할 것이다. 배가 방향을 잡지 못하면 승객이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