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풍류탑골 (3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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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35. 마음 편한 손님

이야기를 하다보니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활동하는 문인들 이야기가 많이 되고 말았는데 그 분들과는 조금 다른 분들도 탑골에 오곤 했다.

물론 특별하게 다르다기 보다는 같은 자리에 어울리는 일이 적었던 분들이라고 해야 옳겠다.

소설가 김원일.김원우.이문열 선생님, 문학평론가 정현기.김화영 선생님 등이 그런 분들인데, 나이드신 민족문학작가회의 쪽 어른들은 서로 어울려 반갑게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대개의 경우 그분들은 홀의 한쪽에 어울려 참으로 점잖게 술을 마셨다. 어지간해선 노래도 안불렀고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면서 편안하게 술을 드셨다.

그분들이 오시면 내가 바쁘게 뛰어 다니거나 곤혹스러운 일은 조금도 없었다. 실례의 말이지만 그런분들은 아무리 많이 오셔도 나 혼자 얼마든지 술시중을 들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다만 그분들 중에서 정현기 선생님은 가끔 한 잔 하시면 노래도 하시고 좌중을 재미나게 휘어잡고 얘기도 하셨다.

정현기 선생님은 염무웅 선생님하고도 친구 사이여서 민족문학작가회의 팀들과 같이 어울려 술을 드시기도 했는데 노래를 할 때는 가곡을 주로 불렀고 정지용의 '향수' 라는 시에 곡을 붙인 노래는 일품이었다.

훤칠한 키에서 바리톤 풍으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많은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고향 마을을 떠올렸고 마시는 술잔을 그윽하게 바라보게 했다.

이문열 선생님은 한국기원에서 바둑대회가 있는 날 대회가 끝나고 난 뒤 가끔 오셨다. 많은 술을 드신 것은 거의 못 봤고 또 매우 바빠 보였다. 그런 때는 밤늦게 신문이나 잡지에 기보 해설을 쓰는 노승일씨나 지금은 소설가로 더 알려진 성석제 시인이 오기도 했다.

그런 분들은 대개 약간의 소란은 있었으나 모두 점잖은 신사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은 모두 너무나 점잖아서 한분 한분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별로 없다. 아무래도 조금은 시끄럽고 또 싸움도 있는 술자리여야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민화투급 대작' 이란 말이 생각난다. 어느 해인지 분명치 않지만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신년하례식을 마치고 여러 어른 들과 함께 소설가 송기숙 선생님이 오셨을 때다.

신경림 선생님이 무슨 얘기 끝에 '왜 백낙청 선생은 안왔느냐' 고 묻자 송기숙 선생님이 한순간도 생각지 않고 답을 하셨다.

"하이 참 고게 무신 소리당가! 나가, 백낙청이 하고 술을 마실라 하믄 차라리 우리 외할머니 허고 민화투 치겄네. 고렇게 재미 없는 사람하고 무신 술을 마시겄능가?"

전라도 걸쭉한 사투리에 얹혀 나오는 그 말에 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배꼽을 쥐고 웃고 말았다. 사실 백낙청 선생님은 탑골에 가끔 오셨지만 거의 들른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오래 계시지 않았다.

또한 여간해서는 한잔 이상의 술을 드시지 않았는데 술 마시는 사람이 어디 그런가. 권커니 잣커니 해야 술을 마시는 것이지. 더구나 송기숙 선생님처럼 두주불사인 분에게는 도무지 성이 차지 않으셨으리라.

소설 쓰시는 분들이어서 그런지 그 표현이 정말 절묘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뒤에 술을 마실 때는 재미없게 술 마시는 사람들을 할머니와 민화투급 술상대라고 비아냥거리면서 마시곤 했는데 생각할수록 재미난 말이다.

아무튼 앞에서 말한 분들이 오신 날은 너무나 평온했고 다른 술꾼들에 비하면 너무나 '민화투급' 들이어서 별다른 추억이 없다.

실제로 가장 큰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추억할 풍경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섭섭하다. 대신 인사를 올리고 싶다.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한복희 <전 탑골주점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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