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선진형 국토관리 전기 마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중앙일보가 이번에 큰 일을 했다. 지난 3월 1일부터 4월 7일까지 7차례에 걸쳐서 연재한 '2천만 공룡 수도권' 기획시리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언론의 주요기능으로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든다. 아울러 국민여론을 선도해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도 역시 언론의 주요기능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언론은 후자의 측면이 취약하다는 비판을 흔히 듣는다. 그러나 공룡 수도권 기획시리즈는 위의 두가지 기능을 모두 충족시킨 모범적인 시도였다.

우선 문제의 제기가 주제선택과 시기선택의 양 측면에서 절묘하게 이뤄졌다. 사실 수도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속으로 곪아왔다. 특히 1990년대 이래로 난개발로 인한 환경오염과 교통혼잡이 급속히 진행돼 왔다.

그래서 수도권 문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깊은 우려의 대상이었고 세미나 등 여러 기회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을 앞세운 무절제한 개발열풍에 휘말려 일각에서 제기됐던 우려의 소리는 응답 없는 메아리로 그쳤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같은 상황이 얼마간 더 지속된다면 병든 공룡 수도권은 치유불능의 상태가 될 것이 거의 확실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중앙일보의 공룡 수도권 기획시리즈가 나왔다. 물론 수도권 문제는 그동안에도 줄곧 언론의 주요 취재대상이었다.

때문에 수도권의 환경.교통문제 등에 대해서는 당사자인 주민은 물론 당국자도 피상적으로나마 대강은 알고 있었다.

다만 언론의 보도방식이 일과성 또는 단편적 문제제기에 그쳤던 관계로 문제에 대한 대응 역시 대증요법식으로 일관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룡 수도권 기획시리즈는 이 문제를 종합적이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심도 있게 다룸으로써 우리 사회의 핵심적 현안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수도권관리의 책임을 맡고 있는 건설교통부.경기도 등 당국은 서둘러 근본적인 대책마련에 나섰다. 지역주민도 일상생활에서 피부로 접하는 문제의 실상과 원인을 확실히 알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난개발에 대한 당국의 책임을 묻는 법적대응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주민들이 난개발의 제동에 발벗고 나섰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토관리에 있어서 하나의 전기를 마련하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공룡 수도권 기획시리즈는 기사내용의 전문성과 대안제시에 있어서도 대체로 성공했다.

수도권 난개발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시한 ▶선계획 후개발 원칙▶개발허가제 도입▶전철 등 대중교통 수단의 확충▶신도시의 자족성 보장▶환경용량에 입각한 도시개발▶준농림지의 철저한 개발관리 등은 매우 정선된 느낌을 준다.

이들은 수도권뿐만 아니라 우리 국토가 선진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정책방향이다. 물론 하나 하나마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그것은 언론의 몫이라기보다는 정부의 책임이다.

최근에 건설교통부의 도시계획법 시행령과 서울특별시의 조례제정을 놓고 논란이 치열하다.

과거 개발연대에 무분별하게 완화됐던 개발규제를 다시 환원시키려는 측과 현상고수측간의 논란이 그것이다.

공룡 수도권 시리즈의 논지를 따른다면 논란에 대한 판정은 자명하다. 사실 선진국의 도시에 비해 도로나 녹지 같은 도시기반시설 수준은 절반도 안되면서 밀도는 몇배씩 높여서 개발을 허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불합리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언론이 바른 여론 선도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한 원인이 있다.

중앙일보의 공룡 수도권 기획시리즈 이후 여러 언론매체에서 국토 난개발을 걱정하는 기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지속적인 여론환기가 전제될 때 비로소 우리 국토의 선진화와 삶의 질 향상이 가능할 수 있다. 새 시대의 선진국토 형성을 위해 새로운 흐름의 물길을 터준 중앙일보에 감사한다.

최병선 <대한 국토.도시계획학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