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커스] 학벌독점해소만이 과외를 없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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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달 27일 헌법재판소는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 '누구든지 과외교습을 하여서는 아니된다' 라는 조항을 위헌으로 선언했다.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를 국가가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형사처벌한다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무식한 법조문이 20년 동안 효력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지극한 비정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희극이다.

이제 과외금지 위헌결정을 계기로 우리는 솔직하게 과외, 그리고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되묻는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한마디로 권력의 모태다. 뜨거운 교육열이란 추악한 권력욕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교육이 권력의 모태일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학벌(學閥)사회라는 데 있다. 원래 벌(閥)이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모인 패거리라는 것이 사전적 정의다.

재벌(財閥)의 경제력 독점이 우리 경제의 근본적 문제인 것처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리현상은 바로 이 학벌독점에 있다.

'대학카스트' 라고까지 불리며 층층이 먹이사슬을 이루는 대학서열구조에서 상위의 몇 개 대학출신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학벌, 즉 패거리를 형성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어느 분야에서 활동하든지 권력에 다가가기 위해선 바로 이 독점학벌의 패거리 안에 들어야 한다.

이 독점 학벌에 들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대학입시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과외열풍이란 한정된 권력을 놓고 벌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정확히는 이 투쟁의 의미를 알고 있는 기성세대간의 전쟁놀이에 우리의 청소년들이 소년병으로 총알받이가 되고 있다고 불러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과외문제의 해법도 우리 사회 권력분배의 매커니즘을 바꾸는 것이어야 하고 그것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학벌독점 체제와 그것이 존속하는 토대가 되는 대학 카스트를 부수는 데로 모아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학벌독점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면이 크므로 그것을 해체하는 것도 강도높은 정책적 결단에 의해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첫째로 학벌독점 체제의 정점에 서 있는 국립 서울대를 변혁시켜야 한다. 일종의 왕립학교가 돼버린, 그리하여 한국 사회를 그들의 식민지로 만들어 버린 서울대의 변혁없이는 어떤 정책도 효과를 보기 힘들다.

현실적인 방법의 하나는 국.공립대를 통폐합해 서울대의 특권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다. 흔히 서울대를 없애면 제2, 제3의 서울대가 생길 것이라고 하지만 그 경우 학벌독점 체제는 훨씬 더 완화하고 가변적인 서열화가 이뤄질 수 있다.

매년 서울대의 입시요강 발표가 초.중등교육 전체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교육파시즘 체제는 속히 청산돼야 한다 .

둘째로 대학입시의 단계적인 평준화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 대학간의 인적.물적 시설의 차이가 현격한 가운데 전체적인 평준화는 불가능하나, 예컨대 지역을 대표하는 국립대학과 그에 상응하는 큰 사립대학 정도를 아우르는 선에서의 평준화는 받아들여질 수 있다.

2002학년도부터 수능시험의 결과를 등급별로 평가한다고 하는데, 상위등급에 드는 학생 수를 조절하고 전형시 추첨 방식이나 최소한 다른 학력기준의 활용을 금지함으로써 자연스런 그룹별 대학평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대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이런 인위적인 정책을 통해서라도 50여년간 누적된 학벌독점 체제를 해체해야만 비로소 참된 경쟁이 작동하는 토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수험생이 특히 상위권일수록 한 점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 피를 말려야 하는 이 무한경쟁의 과외놀음은 시장에서의 수요가 없어져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숨바꼭질 놀음에 속지 말고 문제의 본질에 칼을 댈 때다.

김동훈 <국민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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