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무라 저 '손정의 크게 말하다'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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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 가 올해 선정한 '인터넷 시대를 주도하는 엘리트 25명' 안에는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이 포함돼 있는 반면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은 빠져 있다.

'비즈니스 위크' 의 선정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시사하는 바 크다. 손정의 사장과 빌 게이츠 회장 사이에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답은 '손정의 크게 말하다!!' (다케무라 겐이치 지음.김선영 등 옮김.새물결사)에 들어 있다.

최근 출간된 손씨 관련 책들과 달리 이 책은 관찰자의 시각이 아니라 손씨가 직접 경영 철학을 밝힌다.

원로 저널리스트이자 경제평론가인 다케무라 겐이치가 손씨와 인터넷 시대에 관해 나눈 대담을 정리한 이 책은 우리가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적고 있다.

손씨는 인터넷과 관련된 사업 이외에는 일체 관심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주가 폭락으로 인터넷 거품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사기꾼이라는 비난마저 듣고 있지만 '인터넷은 아직 입구에 와 있다' 고 말할 만큼 손씨에게는 인터넷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다.

인류의 20만년 역사 가운데 농경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쳐 이제 정보혁명의 문턱에 와 있다.

손씨의 시각으로 볼 때 정보사회는 다시 전자제품 메이커들이 이끌어간 아날로그 테크놀러지 단계와 이를 가공한 TV나 신문업체 등 아날로그 서비스 단계,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 같은 PC업계가 주름잡은 디지털 테크놀러지 단계로 나누어진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이런 테크놀러지를 가공한 디지털 서비스 단계. 이것은 이 전 세 단계를 합한 것을 능가하는 힘을 가질 것으로 예측한다.

미국 PC업계 주식 시가총액은 일본 상장회사 전체의 시가총액과 같은 4백조엔. 손씨는 이를 PC가 있었던 미국과 PC가 없던 일본의 차이, 즉 시대 흐름을 탔느냐 못 탔느냐로 설명한다.

그는 앞으로 타야 할 흐름은 인터넷임을 분명히한다.

기업인수합병과 조인트벤처 등의 형식으로 회사규모를 늘려온 손씨는 각 분야의 최고가 아니면 모두 결별하겠다고 선언한다.

인터넷 세계에서 2인자는 필요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경쟁이 심해질수록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전략을 제시한다.

전시회 부문 2인자인 지프 데이비스를 사들인 뒤 1위 컴덱스를 사들인다든지, 머독과 제휴해 미디어에 진출하는 방식이 모두 그가 즐겨 읽는 손자병법식 전략이다.

또 '자기 진화 모델 경영' 이라는 경영 모델도 제시한다. 진화 모델을 조직체에 도입하면 본인 없이도 기업이 진화하며 강해진다고 주장한다.

조인트벤처도 이런 발상 아래 이뤄진 의도적인 돌연변이 생성 작업인 셈이다.

재벌이 일본 근대화에 공헌한 역할이 매우 크다며 이제 '재벌' 을 부흥할 기회라고 말한다거나, 자신이 만든 상품가격을 스스로 정하면 안되는 장사는 없다며 정부의 규제를 비난하는 방식, 또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적으로 PC소프트를 점령했기에 PC시장이 더 성장한 측면이 있다며 독점을 나쁘게 보지 말라는 주장 등은 인터넷 시대와 상관없이 새겨볼 만한 말들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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