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6단인 오자와는 바둑이 유일한 취미이며 프로기사에게 정식으로 사사한 지 5~6년 된다고 했다. 그 정도 경력으로 오자와가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에게 4점을 놓고 7집을 이긴 것은 분명 조 9단이 손속에 온정을 둔 탓일 게다. 그러나 바둑과 정치는 ‘장막 안에서 천 리를 내다본다’는 점에서 일맥이 통한다. 오자와가 정치를 통해 바둑을 이해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오자와-조훈현의 이색 대국은 12일 오후 2시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18층 스위트룸에서 시작해 약 1시간10분간 진행됐다. 오자와의 초반은 견실함과 더불어 녹록지 않은 배짱과 포부를 보여 준다. 조 9단이 평했듯 “호방한 대륙적 기풍”으로 중앙을 에워쌌는데(기보 1) 사실은 하수(?) 입장에선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백이 사방에서 파고들자 오자와는 타협 대신 공격의 칼을 빼들었다. 일단 방향을 정하자 ‘포기’라는 두 글자는 아예 잊은 듯, 상대가 바둑 황제라는 것도 잊은 듯 장고를 거듭하며 일직선으로 대마를 잡으러 갔다(기보 2). 무서운 결단이고 집념이다. 흑4는 일본 바둑이 금기로 여기는 ‘빈삼각’인데 이 최악의 고통마저 감수하며 버틴다. 하지만 백5라는 맥점 한 방에 모든 건 물거품이 된다. 오히려 석 점이 잡히며 큰 출혈을 입었다.
전력을 기울인 공격이 허공을 칠 경우 실망과 자멸의 길을 걷는 게 보통이다. 놀라운 것은 오자와가 이 대목에서 냉정했다는 점이다. 아직 넉 점의 위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재빨리 수습에 나섰는데 이때의 현실 감각과 수순은 박수 받을 만했다.
오자와는 7집을 남겼다. 승패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보다 파국의 유혹을 뿌리치고 반성과 철수의 길을 선택한 오자와의 마지막 변신이 새삼 음미할 만한 이 이색 대국의 백미였다. 국 후 오자와는 “한 부분만 집중하면 다른 부분이 안 보인다. 대세관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바둑과 정치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박치문 바둑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