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 공격 실패했지만 냉정 잃지않고 파국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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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의 바둑은 전체적으로 ‘곡선’보다는 ‘직선’의 느낌이 강했다. 기다리기보다는 선제공격하는 쪽이었다. 전략이란 본시 곡선의 부드러움을 띠는 법인데 ‘전략가’ 오자와는 호방함과 배짱,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밀고 가는 집념과 끈기를 보여 줬다. 그렇다고 화려하거나 감성적인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도전과 집념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곧바로 반성하더니 신속한 철군과 현실적인 수습으로 승리를 얻어 냈다.

아마추어 6단인 오자와는 바둑이 유일한 취미이며 프로기사에게 정식으로 사사한 지 5~6년 된다고 했다. 그 정도 경력으로 오자와가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에게 4점을 놓고 7집을 이긴 것은 분명 조 9단이 손속에 온정을 둔 탓일 게다. 그러나 바둑과 정치는 ‘장막 안에서 천 리를 내다본다’는 점에서 일맥이 통한다. 오자와가 정치를 통해 바둑을 이해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오자와-조훈현의 이색 대국은 12일 오후 2시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18층 스위트룸에서 시작해 약 1시간10분간 진행됐다. 오자와의 초반은 견실함과 더불어 녹록지 않은 배짱과 포부를 보여 준다. 조 9단이 평했듯 “호방한 대륙적 기풍”으로 중앙을 에워쌌는데(기보 1) 사실은 하수(?) 입장에선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백이 사방에서 파고들자 오자와는 타협 대신 공격의 칼을 빼들었다. 일단 방향을 정하자 ‘포기’라는 두 글자는 아예 잊은 듯, 상대가 바둑 황제라는 것도 잊은 듯 장고를 거듭하며 일직선으로 대마를 잡으러 갔다(기보 2). 무서운 결단이고 집념이다. 흑4는 일본 바둑이 금기로 여기는 ‘빈삼각’인데 이 최악의 고통마저 감수하며 버틴다. 하지만 백5라는 맥점 한 방에 모든 건 물거품이 된다. 오히려 석 점이 잡히며 큰 출혈을 입었다.

전력을 기울인 공격이 허공을 칠 경우 실망과 자멸의 길을 걷는 게 보통이다. 놀라운 것은 오자와가 이 대목에서 냉정했다는 점이다. 아직 넉 점의 위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재빨리 수습에 나섰는데 이때의 현실 감각과 수순은 박수 받을 만했다.

오자와는 7집을 남겼다. 승패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보다 파국의 유혹을 뿌리치고 반성과 철수의 길을 선택한 오자와의 마지막 변신이 새삼 음미할 만한 이 이색 대국의 백미였다. 국 후 오자와는 “한 부분만 집중하면 다른 부분이 안 보인다. 대세관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바둑과 정치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박치문 바둑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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