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총리내정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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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와대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에게 정성을 쏟고 있다.

JP가 문전박대할 듯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한광옥(韓光玉)청와대 비서실장은 끈질기게 청구동(신당4동)의 문을 두드려 왔다.

그런 집요함 덕분인지 지난 20일 밤 韓실장은 청구동에서 JP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韓실장은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의 간곡한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金대통령의 뜻은 공동정권을 탄생시킨 DJP 공조정신의 복원이다.

여소야대(與小野大)양당구도에서 안정적 정국관리를 위해선 공조복원 말고는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구체적으로는 '자민련 몫' 이었던 신임 총리를 추천해 달라는 것이다. 韓실장의 그런 요청에 JP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청와대측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회동 이후 청와대 참모들은 "이르면 22일 후임 총리를 지명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총리지명은 대통령 고유 권한인 만큼 알아서 하라는 JP의 의중을 암묵적인 동의라고 생각한 韓실장은 조심스럽게 '자민련 이한동 총재' 카드를 꺼낸 것으로 안다" 고 전했다.

'이한동 총리' 방안은 金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라는 게 여권의 대체적 인식이다. 먼저 공조회복을 과시하는 상징성이 있다는 것. 李총재는 총선과정에서 공식적으로 민주당과의 협조 포기를 선언한 바 있다.

옛 여권에서 내무장관.사무총장.총무를 지낸 李총재가 야당쪽에 일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고려대상이었다고 한다.

둘째 '총리 이한동' 의 존재는 차기 대선 후보의 주자군(群)을 확대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상임고문, 한화갑(韓和甲).노무현(盧武鉉).김근태(金槿泰)지도위원 등으로 짜여진 여권내 차세대 후보대열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고 청와대 관계자는 지적했다. 그가 총리로 등장할 경우 여권내 역학구도에 미묘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李총재도 총리를 맡아달라는 청와대의 제의를 자신의 정치적 운신확대 기회로 파악,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선 '이한동 카드' 에 불만스런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총리인선이 한나라당을 견제하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비판이다. 민주당 당직자는 "전임 박태준(朴泰俊)총리가 도덕성 흠결로 물러난 만큼 후임자 인선은 신선감과 업무장악력을 중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것이 金대통령의 부담으로 돌아갈까 걱정" 이라고 말했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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