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안보의 먹구름, 불안한 미·일 동맹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44호 02면

한국 표준시(KST)는 동경 127.5도와 135도를 몇 차례 오갔다. ‘시간 주권’이라는 표준시는 1908년 서양식 시간대를 처음 도입할 때 한반도를 관통하는 127.5도로 설정됐다. 하지만 일제 강점 후 동경 135도로 바뀌었다. 한국전쟁 뒤 이승만 정부가 127.5도로 되돌렸다가 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다시 135도로 변경했다.

표준시가 오락가락한 것은 두 가지 변수 때문이었다. 첫째, 대부분의 국가가 국제표준시(GMT)에서 경도 15도 간격, 1시간 단위로 시차를 두고 있다. 둘째, 일본과 미국의 변수다. ‘내선 일체’를 강요하던 일제는 도쿄 표준시에 서울 표준시를 갖다 맞췄다. 그런데 미국은 왜 그랬을까. 바로 주일·주한 미군의 통합 운용을 위해서였다. 한국전쟁 직후 한반도 작전관할권은 도쿄 극동사령부에 속해 있었다. 한·일 표준시가 30분 차이 나게 되면 미군은 불편과 혼란을 겪어야 했다.

표준시엔 이처럼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의 동시성이 함축돼 있다. 그런 눈으로 보면 오키나와 미군기지, 즉 후텐마 해병항공기지를 둘러싼 미·일 갈등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새 요인으로 부상할 수 있다. 후텐마의 4대 임무 중 하나는 유엔사령부의 후방기지 역할이다. 6·25 때 미국의 B-29 폭격기들은 여기에서 발진했다.

오키나와는 한반도와 1250㎞ 떨어져 있다. 전투기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다. 이곳에는 37개 미군 기지, 2만4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오키나와 전체 면적의 10.4%(236㎢)를 쓰고 있다. 그런 만큼 오키나와 주민들의 미군기지 축소·철수 요구는 거세지고 있다. 역대 총선에서 여당 후보들이 이 지역에서 번번이 지는 이유다. 만의 하나 후텐마를 시작으로 오키나와 미군기지들이 괌이나 하와이로 이동하면 유사시 미군 전력의 도착시간은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하토야마 유키오가 이끄는 민주당 정권은 지난 8·30 총선 당시 미국과 대등한 동맹 관계와 아시아 중시 외교를 공약했다. 이 공약이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섬의 다른 간척지역으로 옮긴다는 2006년 미·일 합의를 파기하려는 정치적 배경이 된다. 하토야마에겐 ‘일본의 노무현’이라는 닉네임까지 붙었다.

일본의 행보에는 중국이라는 수퍼파워를 의식한 측면이 강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54년 “오키나와는 태평양의 요석(keystone)”이라고 갈파했다. 그 발언엔 ‘중국 포위론’이 깔려 있다. 하토야마 정부의 속내엔 중국 포위론에서 벗어나 중국과 더 이상 적대하지 않겠다는 뜻이 숨어 있다.

미·일 간 후텐마 논란은 한반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차이나 파워가 커지면서 미국의 안방 격이었던 일본이 딴마음을 품은 모양새다. 한국 유사시 일본의 후방기지 역할도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안보동맹을 강화하고, 중국과 대북 이해관계의 일치를 추구하며, 일본엔 동아시아 안정의 분담 책임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