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슈베르트는 편곡 대상 1호?

중앙선데이

입력 2009.12.1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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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05면

얼마 전 만난 한 작곡가는 “이 사람의 작품만 보면 편곡 유혹에 시달린다”고 털어놓더군요. 공부를 위해 이 작곡가의 음악을 분석하다 보면 선율을 가져다 쓰고 싶어진다는 뜻이었습니다. 손을 대서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이죠.아니나 다를까,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는 이 사람의 음악을 30편 이상 편곡했습니다. 완벽한 기교파였던 리스트는 이 작곡가가 만든 선율에 화려한 장식을 입혔습니다.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아름다운 가락들이 간간이 들려올 때마다 숨은 그림을 찾은 듯 황홀합니다. 20세기의 작곡가인 벤저민 브리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또한 자신의 작품 안에 이 선배 작곡가의 선율을 쓰면서 존경을 표시했습니다. 현존 작곡가인 독일의 한스 첸더 역시 현대적인 기법을 동원해 이 사람의 옛 노래에 빛을 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입니다. 정확한 조사는 없지만 슈베르트는 음악사에서 가장 많이 편곡ㆍ재해석된 작곡가 중 한 명일 것입니다. 특히 빌헬름 뮐러의 시 24편에 곡을 붙인 ‘겨울나그네’는 각각의 노래가 훌륭한 재료입니다. 그의 작품 중 ‘겨울나그네’를 비롯한 가곡이 편곡 대상으로 인기가 특히 많습니다. 기억에 잘 남고 특징적인 선율 덕분이죠. 선율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시어를 표현한 음악적 기법도 후배 작곡가들을 자극합니다. 물결치는 보리수, 차가운 바람을 피아노 소리로 바꿔 놓은 것을 보고 같은 작곡가로서 경쟁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슈베르트는 어떻게 이런 선율을 남길 수 있었을까요? 그는 ‘펜 속에 음악이 들어 있는 것처럼’ 작곡했다고 합니다. 음악이 ‘머릿속’에 있는 사람을 따라잡을 순 없었겠죠. 손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곡을 쓴 그는 31세의 ‘최단’기간 동안 1000여 곡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사후에야 발견된 것도 많습니다. 내키는 대로 작곡을 하고 아무렇게나 내버려 둔 것이 많기 때문이죠. 잘 알려진 ‘미완성’ 교향곡 또한 죽음 때문에 작곡이 중단된 게 아닙니다. 이 작품을 2악장까지만 완성한 그는 이후에도 6년을 더 살았습니다.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창작 스타일이 작품의 완성을 막았죠.

베토벤과 비교해 볼까요? 1988년 베토벤이 남긴 몇 소절의 음악이 발견됐습니다. 영국의 작곡가이자 음악학자인 베리 쿠퍼는 이것을 가지고 베토벤의 교향곡을 조립했죠. 마지막 교향곡인 9번 이후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입니다. 음악 조각들을 베토벤의 스타일로 이어 붙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928년 슈베르트의 사망 100주기를 맞아 음반사 컬럼비아 그라모폰이 ‘미완성 교향곡 완성 경연대회’를 열었을 때 100여 명의 작곡가가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내놨던 것과 비교해 볼 만합니다. ‘열린 결말’을 가지고 자유롭게 창작된 슈베르트의 선율은 많은 작곡가에게 자신을 새롭게 편곡해 보라는 유혹의 눈빛을 던지는가 봅니다.

A 자유로운 ‘열린 결말’이 재해석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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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화부의 클래식·국악 담당 기자. 사흘에 한 번꼴로 공연장을 다니며, 클래식 음악에 대한 모든 질문이 무식하거나 창피하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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