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총리 황국사관 발언 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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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가 잇따라 제2차 세계대전 전의 황국사관이 깔린 내용을 발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야당은 국민 주권과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며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고 일부 각료들마저 발언을 비판해 모리는 취임 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모리는 15일 신도(神道)정치연맹 의원 간담회 결성 30주년 기념식에서 "일본은 천황 중심의 신(神)의 나라" 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의 목숨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신과 부처를 학교와 사회.가정에서 가르치는 것이 일본의 정신론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라고 덧붙였다.

발언은 다음달의 총선을 앞두고 신사 관계자들의 지원을 받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모리는 발언이 물의를 빚자 16일 "일본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 측면에서 말했다. 전후의 주권재민(主權在民)원칙과 모순되지 않는다" 고 해명했다.

그러나 야당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내각 불신임안 제출을 검토 중이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대표는 "발언은 대일본제국 헌법의 정신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 주권재민의 이념과 맞지 않는다. 이같은 발언은 전대미문" 이라고 비판했다.

공산당과 사민당은 퇴진을 요구했다. 후와 데쓰조(不破哲三)위원장은 "총리의 두뇌와 정신이 전전(戰前)의 신국사상에 젖어 있다.

총리로서의 자격이 없다" 는 담화를 냈다. 사민당도 "총리의 본질을 드러낸 발언이다.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한 만큼 사퇴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각료들도 발언을 성토하고 나섰다. 나카야마 마사아키(中山正暉)건설상은 "행정에 종교를 끌어들여서는 안된다" 고 말했다.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관방장관도 "여러가지를 생각해서 발언해야 한다" 며 발언이 부적절했음을 내비쳤다. 각료들이 총리 발언을 문제삼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황국사관과 결부된 모리의 발언은 총리 취임 후 이번이 두번째. 지난 9일에는 한 정치후원회에서 "교육칙어에는 좋은 점도 있다" 고 말해 반발을 샀다.

교육칙어는 1890년 메이지(明治)일왕이 제정한 것으로 충(忠)과 화(和).효행을 강조한 교육에 관한 기본이념. 황국사관을 바탕으로 일왕의 이름으로 이들 이념과 실천항목을 규정했다.

교육칙어는 전후 교육기본법 제정으로 국회에서 그 실효가 확인됐다. 모리가 교육개혁과 관련해 교육칙어의 일부를 들여오려는데 대해서는 교육개혁 자문회의 멤버들도 비판적이다.

모리의 잇따른 발언은 그의 우익 성향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총리 취임 후에도 일제의 침략전쟁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지난달 국회 답변에서 "일본의 침략전쟁은 역사속에서 판단해야 한다" 고 말했다. 최근 10년새 총리 가운데 역사인식 문제와 관련해 가장 후퇴한 발언이다.

1992년 자민당 정조회장 때 "한국인 노동자가 한데 뭉치면 군사행동이 될 우려가 있다" 고 한 것도 그의 역사인식에 의문을 품게 하는 것 중의 하나다. 그의 우익성향 발언은 주변국과의 긴장 관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모리 총리의 대응이 주목된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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