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 칼럼

출구전략 딜레마에 빠진 유로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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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단일 화폐는 또한 단일 환율을 의미한다.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각국 차원에서 조정할 수단이 없는 것이다. 자국 화폐를 운용할 경우 환율을 조절해 수출의 숨통을 틔울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할 땐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해소하는 길은 실질 임금을 줄이거나 생산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의 경제 회복이 시작되면 출구전략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몇몇 나라에는 아주 적실한 조치가 될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경제가 약한 나라들은 반대할 수밖에 없다. 독일과 스페인의 상황은 이 문제를 잘 대변한다. 독일의 실업률은 8%인 반면 스페인은 두 배가 넘는 19%에 달한다. 지난 1년간 독일의 무역 흑자액은 1750억 달러(약 201조원)에 달했지만 스페인은 같은 기간 84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만약 이 두 나라가 옛날처럼 마르크화와 페세타화를 썼다면 마르크는 평가절상됐을 것이고, 페세타는 평가절하됐을 것이다. 페세타 약세는 수출 증가와 수입 감소로 이어져 내수가 활력을 찾고 실업률도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유로존과 스페인 은행의 통화 정책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유로존의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ECB는 스페인 경제의 회복 속도를 앞질러 금리 인상을 단행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스페인의 실업은 더 악화될 것이다. 스페인을 비롯한 유로존의 다른 고실업 국가들은 이 정책에 반대한다.

EMU를 이탈하는 게 이득이 되는 나라가 스페인뿐이 아니다.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 심지어 이탈리아까지도 자국 통화를 운용하는 편이 더 이롭다. EMU를 이탈하는 나라의 경우 무역 적자를 보면 유로에 대한 자국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리려 할 것이다. 그러면 다른 유로 국가들보다 값이 싸진 그 나라 상품은 경쟁력이 생기고 수입품은 더 비싸질 것이다. 하지만 세계 금융시장은 실업률이 높은 나라가 저환율·통화 팽창 정책을 쓴다는 것을 잘 안다. 국제 투자자들은 곧 이 나라에 투자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할 것이고 국채 금리는 올라갈 것이다.

EMU를 이탈하는 나라는 EU 재무장관회의에서 역할이 축소될 것이며, 안보·외교정책에서 발언권도 줄어들 것이다. 극단적으로 EU에서 배제돼 교역상 이점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런 경제·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EMU 회원국의 이탈이 쉽지 않다. 하지만 EMU 틀 안에서 자국 경제 문제를 처리할 수 없는 나라들은 결국 잔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틴 펠트스타인 하버드대 교수·경제학
정리=정용환 기자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