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말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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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춘추(春秋)시대 초(楚)나라 영왕(靈王)에게는 권모술수에 능한 동생이 있었다. 형에게서 병권을 받은 동생은 잇따라 공을 세워갔다. 이웃인 채(蔡)나라를 정복하는 전과를 올리자 영왕은 그곳을 동생에게 줬다. 커다란 성곽도 함께 지어 하사했다.

동생에 대한 총애는 이어졌다. 영지까지 확보한 동생의 위상은 따라서 날로 높아지고 있었다. 지방의 실력자로 부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무엇인가 마음에 걸렸는지 왕은 신하 신무우(申無宇)에게 이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신무우는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실력을 키워가고 있던 동생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간언을 올렸다.

“그럼, 성곽을 지어준 것은 어떻게 보는가?” 왕이 이어 물었다. 그 대답 중에 나오는 명구가 있다. “(가지의) 끝이 커지면 반드시 부러지고, 꼬리가 커지면 흔들 수 없다(末大必折, 尾大不掉)”는 말이다. 그 우려대로 영왕은 나중에 목을 매 자살한다. 권력을 넘보던 동생이 급기야 형이 없는 틈을 타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권력을 유지하는 데 있어 비(非)본질적인 요소인 동생에 대한 총애가 도를 넘친 결과다. 별로 소용이 닿지 않는 가지에 과도하게 영양분을 준 것이 그만 나무 자체가 쓰러지는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사물에는 뿌리와 가지가 있다(物有本末)’고 했다. 중요한 것과 지엽적인 것을 제대로 구별해야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 가지와 꼬리, 말미(末尾)에 집착하면 결국 사달이 벌어진다.

광화문광장을 두고 서울시가 내거는 홍보전략이라는 게 꼭 그런 인상이다. 서울을 알린다며 광장을 ‘아이리스’ 촬영진에 내주고, 세계적인 스노보드 대회를 유치했다. 홍보라는 것은 스스로 내실이 들어찼을 때 자연스레 이를 알리는 작업이다.

먼저 광장의 품격을 훌륭히 가꾸거나 서울이 지닌 내용물을 한 차원 높인 뒤 이를 외부에 알리는 게 순서다. 광장의 개념 자체가 혼란스럽고, 서울이 특별히 내세울 게 없는데도 홍보에만 몰두한다면 그것은 어설픈 위장술에 불과하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살기 좋은 서울이다. 보기 좋은 서울이 아니다. 서울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다면 홍보는 자연스레 이뤄진다. 뿌리와 가지를 구별하지 못해 겉 꾸미기에 혈세를 퍼붓는다면 대단한 국가적 손실이다. 내 안에 말초(末梢)적 취향은 없는가. 위정자들이 진지하게 자문할 때다.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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