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학원폭력 방치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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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달 중순께부터 전국의 20여개 대학교에서 학생회를 주축으로 한 일부 학생들이 등록금 동결이라는 주장을 앞세워 총장실을 점거하며 학교 행정을 마비시키고 있다.

이러한 폭력행위에도 불구하고 학교당국은 소위 대화를 통해서 문제해결을 하겠다고 하고 있으며, 경찰 등 정부의 책임있는 기관들은 현장을 외면하고 팔짱만 끼고 있는 형편이다.

금년에 등록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일부 학생들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대부분 대학의 등록금은 1998~99년의 2년간 한푼도 오르지 않았다.

물론 외환위기와 그에 따른 소득감소 때문이었다.

다행히 지난해에는 경제가 많이 회복됐고 실업자도 줄었으며 국민소득도 9% 가량 늘었다.

따라서 물가상승률 1%를 감안했을 때 10% 내외의 등록금 인상은 학부형의 부담을 생각했을 때 그다지 과한 수준은 아니다.

그리고 사립대학의 살림살이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인상은 절대로 필요한 수준이다.

사회 전체가 지식정보 중심으로 이행하면서 인적자산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지금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으면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외국대학에 비해서 더욱 더 뒤떨어 질 것이다.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시설개선, 컴퓨터 등 정보인프라 확충, 새로운 교수요원 확보 등 많은 투자가 따라줘야 한다.

현재의 사립대학이 그러한 투자재원을 어디서 확보할 수 있겠는가.

지금 국내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국민소득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

현재 연세대의 연간 등록금은 미국 일류 사립대학의 6분의 1 정도다.

또한 학부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은 학교 경상비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밖에 되지 않으나 대학교육은 아직도 학부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니까 현재의 학부교육은 대학 내의 다른 프로그램에서 생기는 수입으로 보조를 받고있는 셈이다.

대학의 재정상태, 상대적 등록금 수준, 학생.학부모들의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을 때 10% 내외의 등록금 인상은 결코 무리한 수준이 아니다.

사실 학생회가 진정으로 학생들의 복지를 생각한다면 등록금은 올리되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방안을 학교당국과 같이 연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작금의 소위 등록금 투쟁의 근본적인 문제는 불법과 폭력이 번연히 자행되고 있는데도 이것이 그대로 용인되고 있다는 데 있다.

대학 내에서의 폭력은 우리나라의 두 가지 전통 때문에 지금까지 묵인돼 왔다.

하나는 대학이 과거 독재정권에 대한 투쟁의 본산이었고 그 때문에 교내폭력이 정당화돼 왔다.

또 하나는 스승은 항상 제자를 타이르고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유교적 전통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두 가지의 전통을 모두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학생들과 대화하고 협의는 해야 하겠지만 폭력에는 학칙과 법에 의해서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총장실을 점거하고 사무실에서 교직원을 몰아내며 학교행정을 마비시키는 행위는 학생이 해서는 안되는 불법행위다.

학교는 경찰에 의뢰해서 이러한 폭력행위를 중단시켜야 하며 당연히 이들 학생을 처벌해야 한다.

경찰과 정부는 국가 질서확립 차원에서 학교의 요청에 적극 응해야 한다.

현재 일부 학생회가 주도하는 소위 등록금 투쟁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서 이를 이념투쟁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운동권 학생들의 조직적인 기도다.

이러한 투쟁은 학생회가 대변해야 할 학생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며 우리 대학이 새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도모하는 데도 크게 해악을 끼치는 일이다.

이런 학생회 간부들이 10년 후에는 다시 신세대니 뭐니 하면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고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정구현<연세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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