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에 고입 검정고시 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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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8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손호자(孫好子.70.양원주부학교)할머니댁에는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할아버지가 몇달째 녹내장을 앓고 있어 걱정이 많던 孫할머니가 지난달 5일 치른 고입 검정고시에서 최고령 합격했다는 소식을 학교로부터 통지받았기 때문이다.

孫할머니는 1931년 일본 고베(神戶)에서 태어난 뒤 심상(尋常)소학교 5학년 때 온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귀국했다.

하지만 부산여중 2학년이던 45년 어머니가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공부를 중단해야만 했다.

孫할머니는 "이제껏 7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눈코 뜰새없이 바빴지만 못다한 공부에 대한 소망은 한번도 버린 적이 없었다" 고 말했다.

이같은 향학열을 바탕으로 85년 한식.일식 2급조리사 자격증을 각각 땄고 90년에는 운전면허시험에도 합격했다.

孫할머니가 양원주부학교 중학반에 입학한 것은 92년. 친구들과 함께 용기를 내 발을 내디딘 뒤 고등반.전문반.연구반을 차례로 졸업했고 98년엔 평생반에 등록했다.

올초 孫할머니는 당초 "내 だ結?무슨 검정고시냐" 며 생각도 않던 고입 검정고시에 도전키로 결심했다.단지 공부하는 게 즐거워서였다.1주일에 2시간씩 강의를 듣고 밤새워 영어사전과 옥편을 찾았다.

孫할머니는 "요즘 고액과외니 하며 시끄럽지만 공부에 빠져들다 보면 재미가 절로 생긴다" 며 '공부 예찬론' 을 수차례 강조했다.

남편 조상환(曺尙煥.78)할아버지는 "당뇨병으로 안좋은데 밤새 공부하는 걸 보면 너무 안쓰러웠다" 며 "젊은 사람도 힘든 검정시험에 합격해 자랑스럽다" 며 기뻐했다.

양원주부학교에서는 이번 고입.대입 검정고시에 모두 1천1백여명의 늦깎이 주부들이 응시해 4백70여명이 합격, 만학의 기쁨을 나눴다.

고광춘(高光春.31)교무주임은 "아직도 수많은 어머니들이 공부할 기회를 놓친 뒤 다시 도전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 며 "孫할머니의 경우처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 라고 강조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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