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커지는 구권화폐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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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이 수사중인 구권(舊券)화폐 사기사건이 1980, 90년대에 이은 '제3의 이철희(李哲熙.77).장영자(張玲子.55) 사건' 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제1의 李.張사건은 82년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바 있는 李씨와 아내 張씨가 7천억원대의 어음 사기를 벌인 혐의로 구속된 사건으로 당시 국가경제를 발칵 뒤집어놓으며 무려 31명이 구속됐다.

李.張씨는 각각 15년형을 받고 복역중 각각 91, 92년 가석방으로 풀려났으나 2년 뒤인 94년 또 다른 1백억원대 어음 사기사건인 제2의 李.張사건이 터지면서 張씨가 또 다시 구속됐다. 張씨는 98년 8.15특사때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구권화폐 사기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서부지청은 4일 "현재까지 張씨의 사기액수가 1백1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며 "張씨가 이외에 또 다른 3개의 시중은행 간부를 상대로 구권화폐 사기를 벌이려던 혐의가 밝혀져 조사중" 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張씨의 이번 사기금액은 2백여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은행간부는 수수료로 수억원을 챙기거나 거액의 은행예금을 유치할 목적으로 원래 잔고가 없는 계좌를 나중에 입금받는 것을 조건으로 미리 수표를 발행하는 방법(선수표 발행)으로 張씨에게 불법적으로 자금을 유용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수법으로 張씨에게 수표를 발행해 준 혐의(업무상 배임)를 받고 있는 Y은행 모지점 李모(38)과장과 C은행 모지점 李모(45)지점장 등 2명이 지난 2일 구속기소된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제1, 2의 李.張 사건때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張씨에게 자금을 조달한 은행 간부 수십명이 구속됐었다" 며 "수신고를 높이는 것을 최고 목표로 삼는 은행 간부들로서는 유혹을 쉽게 이겨내지 못했을 것" 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은행 관계자들의 이런 행위가 경제질서를 혼란시키는 범죄로 보고 다른 3개 은행 간부들이 張씨에게 이런 식으로 수표를 발행한 혐의가 드러나면 엄중 조처할 방침이다.

張씨는 현재 93년 국공채 투자 등의 명목으로 20여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청주지법에서 재판계류중이다.

지난달 30일에는 서울지검 조사부(부장검사 慶大秀)가 역시 국공채 투자 등의 명목으로 돈을 꾸거나 채권자들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는 수법으로 45억여원을 가로챈 혐의(특경가법상 사기)로 李.張 부부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지검에 불구속 기소된 사건의 피해자들은 60년대말 국방부장관을 지낸 崔모(79)씨와 70년대말 육군 정보사령관 등을 지낸 柳모(72)씨 등 전직 고위 관료 3명이다.

검찰은 "이들은 모두 李씨와 비슷한 시기에 군에 몸담고 있었거나 잘 아는 사이고, 李씨가 개입한 흔적이 있다" 며 "李씨가 고령으로 거의 활동이 없다고는 하나 사기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것으로 미뤄 구권화폐 사기사건에도 관련이 있을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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