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전 국가정보원 2차장 엄익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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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2월 중순에 처음 암이란 걸 아셨습니다. 그렇지만 남북 정상회담 등 각종 현안이 산적한 상태에서 사표를 내면 국정에 부담이 된다며 힘이 있을 때까지 집무를 보겠다고 하셨죠. "

3일 별세한 엄익준(嚴翼駿)전 국정원 2차장을 마지막으로 챙겼던 보좌관 金모씨는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990년 고위급 회담 때 그와 함께 일했던 이준구 전 남북회담사무국 연락부장은 "6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누구보다 반겼던 그가 회담 성사를 보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뒀다" 며 아쉬워했다.

직접 소관사안은 아니었지만 남북회담에 오랫동안 관여한 경험 때문에 고인은 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자 이를 부인(林美子씨)과 보좌관 두사람에게만 알렸다.

그렇지만 이들은 嚴차장에게 일손을 놓으라는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워낙 강해 손에서 일을 놓으면 곧 돌아가실 것 같아 어쩔수 없었다" 것이 林씨의 말이다.

66년 국정원 전신인 중앙정보부에 입사한 뒤 34년간 정보맨으로 일해온 고인은 지난 달 7일 집무실을 떠나면서 A4용지 3쪽 분량의 이임사를 남겼다.

"돌이켜 보면 국정원 34년 재직 중 대북전략국장과 3차장.2차장등 요직을 두루 거치는 영광을 안아 국가와 국정원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며 후배들에게 3가지를 당부했다.

공직자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어느때보다 조직의 화합이 필요하며, 부단한 자기개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이임사는 직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해 嚴차장의 헌신적인 복무자세를 본받자는 취지의 전자메일이 돌려졌다.

고인은 총리보좌관이던 지난 94년 7월2일 판문점에서 열린 정상회담 실무대표 접촉에 참가하는 바람에 장녀 혜선(慧鮮)씨의 결혼식에도 가지 못해 화제가 됐었다.

당시 그는 "둘다 일생에 한번 있는 일이지만 아버지의 역할보다 공직자로서의 사명이 먼저" 라며 결혼식장으로 가던 도중 회담장으로 발길을 돌릴 정도로 공직에 대한 책임감을 발휘했다.

그는 97년 안기부장 제3특보를 거쳐 3차장에 올랐다가 이른바 대선 북풍(北風)사건에 휘말려 이듬해 3월 조직개편 때 면직된 쓰라린 경험도 했다.

그러나 탁월한 대북전략통인 그의 경험을 필요로 했던 국정원은 지난해 6월 다시 그를 불러들였다.

상황판단이 빠르고 업무추진력이 뛰어나 90년 남북고위급 회담 때부터 남북협상과 대북전략 수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그는 올해 보국훈장을 받은 것을 비롯해 대통령 표창과 홍조근정훈장등 상훈도 여러차례 받았다.

국가정보원은 嚴전차장의 장례를 6일 국가정보원장으로 치르고 유해를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할 예정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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