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학교 없지만 5만 명이 제2외국어로 아랍어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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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올해도 아랍어가 수능 시험의 논란 대상이 되고 있다. 제2외국어·한문 영역의 선택과목 간 표준점수 최고점 차를 31점으로 벌려놓아 선택과목의 ‘유불리’ 문제가 또 불거진 것이다. 제2외국어·한문 영역에서 아랍어는 표준점수 최고점이 100점이었다. 독일어·프랑스어·일본어·한문 등(69점)과 31점 차이가 났다.

아랍어는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이 없어 전체 평균점수가 낮다. 따라서 조금만 잘해도 높은 표준점수를 받을 수 있다. 다른 영역이나 과목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표준점수 100점이 아랍어에서는 매년 나오고 있는 이유다. 올해 수능에서도 649명이 100점을 받았다. 지난해 162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탐구영역이나 제2외국어·한문영역의 선택과목은 원점수로 만점을 받지 못해도 표준점수화했을 때 100점을 넘어가는 경우 그대로 100점 처리한다.

현재 아랍어를 정식 과목으로 채택해 가르치는 학교가 한 곳도 없다는 것이 더 문제다. 아랍어를 배우려면 EBS나 입시학원 강의를 통해 독학해야 한다. 잘하는 학생이 적다 보니 무작정 응시하더라도 좋은 점수가 나오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입시학원 관계자는 “아랍어 응시자의 90% 정도는 공부를 전혀 안 하고 시험을 본다고 보면 된다”며 “‘시험 당일 잘 찍으면 반 타작 이상 할 수 있다’는 농담이 돌 정도”라고 말했다.

아랍어 응시자도 급증하고 있다. 2006학년도 2184명, 2007학년도 5072명, 2008학년도 1만3588명, 2009학년도 2만9278명에 이어 올해는 5만1141명이 응시했다. 전체 제2외국어·한문영역 응시자 가운데 42.3%를 차지했다.

아랍어 다음으로 선택자가 많은 일본어(2만5630명, 21.2%), 한문(1만6745명, 13.9%), 중국어(1만2666명, 10.5%) 등과도 큰 차이가 난다. 10여 년 전만 해도 대부분 학교가 제2외국어로 많이 가르쳤던 프랑스어, 독일어 선택자는 매년 줄어 올해 각각 4172명(3.5%), 3503명(2.9%)만 응시했다.

서울대 등 일부대가 아랍어를 포함해 제2외국어 성적을 반영하고 있다.

◆입시용 아랍어 대책은=고득점이란 부작용이 되풀이돼도 교육 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가르치는 학교는 없지만 현행 고교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어 교육과정을 출제범위로 하는 수능에 아랍어를 포함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김성열 원장은 “아랍어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현재의 출제기법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김보엽 대학자율화팀장은 “실제 대학들이 제2외국어·한문 영역을 반영할 때는 표준점수가 아닌 백분위를 사용하기 때문에 선택과목 간 유불리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교과부는 아랍어를 교육과정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교과부 김동원 교육과정기획과장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아랍어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랍어를 교육과정에서 뺄 수는 없는 일”이라며 “아랍어 교육과정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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