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시절이 바뀌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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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지난 정권만 해도 정권이 파업을 부추긴 측면이 없지 않았다. 노동문제만 생기면 무조건 노조 말을 들어주도록 유도했다. “더 이상 시끄럽게 하지 말고 빨리 끝내라”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방침이었다. 그런 방침 아래서 누가 노조와 맞붙을 수 있었겠는가. 말로는 소외된 사람, 억압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정부라고 했지만 사실은 노조천국인 나라로 만들었다. 그러니 사장보다 월급을 더 받는 철도 노조원이 400명이 넘게 된 것이다. 이러고서도 임금을 더 인상하라고 파업을 하니 어느 국민이 지지를 보내겠는가. 그러니 물결이 바뀌는 것이다. 영산강은 말라붙어 도랑보다도 못하게 됐는데 중앙에서는 환경 악화를 내세우며 반대했다. 지금 상태로 내버려 두는 것이 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인데 엉뚱한 주장을 하니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호남은 무조건 노란색 당’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그 땅에 새 인식이 태동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의 방식에 익숙해 있다. 이런 일이 생겼을 때는 이런 식으로 대응한다는 습관이 우리를 지배한다. 주변 환경이 과거와 비슷하다면 이러한 습관적 조건반사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경험의 법칙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환경이 달라졌는데도 과거의 패턴과 똑같이 반응한다면 새 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지금 우리는 이런 변화의 시기에 다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일이 더디게 진행될 때마다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한다. 왜 그때처럼 밀어붙이지 못하는가 하면서 답답해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때가 좋았다 해도 결코 돌아갈 수 없다. 그때는 노동자의 희생, 민주주의의 억압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제 다시는 그런 환경이 올 수도 없고 와서도 안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호남에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이 되던 시절은 지나갔다. 노동자를 위한다며 막무가내 강경 노선을 걸어도 지지를 받던 시절도 지나갔다. 그런 것이 먹히던 때가 있었다. 이제 시절이 바뀌었다. 지금은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국민이 변한 것이다. 이런 변화를 모르고 단순하게 이명박 정권의 행태에 연결시켜 야당이 무조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반대만 하다가는 자기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다. 여당 역시 이것을 여당이나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로만 받아들인다면 예기치 못한 파도를 맞을 수 있다. 이런 결과는 큰 물결이 바뀌는 데서 오는 하나의 부수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에서 다른 장관도 아니고 법무장관을 지낸 인물이 국회의장실을 점거해 불법 농성을 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모르고 하는 짓이다. 국회를 비워놓고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것을 칭찬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야당은 과거의 방식에 매여 있다. 지금 정부는 경제회복을 내세우며 수백조원의 돈을 펑펑 쓰고 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인플레는, 물가는, 세금은 어떻게 되나? 국민은 불안하다. 누가 걱정해 주고 있는가? 왜 이런 데 눈을 못 돌리는가?

여당은 짐짓 웃음을 참고 있는 눈치다. 이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야당이고, 노동계고 다 청소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국민들은 무조건적인 반대도 싫지만, 턱없는 오만도 싫어한다. 세상사에는 사이클이 있다. 올라가는 때가 있으면 내려가는 때가 있다. 올라갈 때 겸손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법이다. 혹시 지금이 그런 때인지 모르겠다. 이런 자세가 쇠퇴의 내리막길을 잉태하는 것이다. 우리는 힘 있는 자들의 오만만 보아왔지 너그러운 겸손은 보지 못했다. 이럴 때 몰리는 야당을 감싸 안고, 합리적 요구라면 노조의 의견도 수용해 보라.

국민의 눈은 점점 높아지고, 더 합리적으로 변하고 있다. 공정하게 판단할 줄 안다. 이 새 물결 위에 배를 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든 야든 오도 가도 못하고 개펄에 얹힌 배가 되고 말 것이다.

문창극 대기자

◆반론=칼럼에서 철도공사 사장보다 월급을 더 받는 노조원이 400명이 넘고, 철도노조가 임금인상을 이유로 파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철도노조는 사장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노조원은 없으며, 11월 26일자 파업은 사측의 일방적인 단협 해지 통보 및 임금구조 변경 강행 등에 따른 것으로 임금인상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밝혀왔습니다.